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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인터뷰/독보적 성공스토리 OSL 유영종 회장

기사승인 [1953호] 2019.10.02  1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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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사 30주년 특집/ 국제물류 최전선①

“좋은 인간관계로 형성된 ‘신뢰’가 성공 포인트”

   
▲ OSL 유영종 회장

창립 이후 15년 연속 흑자 매출·이익 15% 증가
부산신항 배후지 물류 창고 유치에 최선의 노력

국적선사 출신들이 포워딩 회사를 설립하여 성공한 예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1980년대 중반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양컨테이너선사인 대한선주에서 영업을 총괄하던 모 상무이사가 회사를 그만둔 뒤 포워딩 회사를 차렸지만 영업이 되지를 않아서 2년만에 회사를 정리했던 사례가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풍토에서는 ‘선사 영업’과 ‘포워딩 영업’이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국제물류의 最戰線에서는 많은 대한민국 포워더들이 국내외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좀 독특한 이력의 국적선사 출신이 설립한 포워딩 회사가 선전을 하고 있어서 주목이 된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을 거치고 콘솔전문 외국 포워더의 한국대표까지 지낸 오리엔트 스타 로직스(OSL)의 유영종회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선사 출신은 포워딩 회사를 설립하면 실패한다’는 업계의 통설을 완전히 뒤집고, 창립 15년 동안 계속적인 흑자를 기록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한 OSL 유영종 회장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전문>

유영종 회장이 해운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 한진해운이 대한선주 인수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유영종 회장은 대한항공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일본지역본부 총괄담당으로 발령이 나면서 계열사인 한진해운의 대한선주 인수업무까지를 총괄하게 됐던 것이다. 이후 유영종 회장은 자연스럽게 한진해운으로 적을 옮겼고, 1992년 한진해운 본사로 돌아와서는 심사부장을 역임하고 뒤이어 1995년에는 한진해운 싱가포르 지점장으로 파견되어 완전한 ‘해운맨’이 되었다.

포워딩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콘솔 전문회사 나이가이 트랜스 라인(Naigai Trans Line, NTL)의 한국법인 사장을 맡으면서 부터이다. 한진해운 싱가포르 지점장까지 지낸 유 회장은 1999년 한진해운 한국 영업담당 상무가 되어 영업을 계속하다가 2003년에 한진해운을 퇴직하게 되자 NTL측이 그를 한국 사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그러나 NTL은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일본 회사여서 그런지 유 회장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보수적인 회사였다. 새로운 서비스를 해보고 싶은 유 회장의 의욕은 번번히 제지를 당했고 이런 것이 갈등요인으로 쌓여갔다. 결국, 2년만에 NTL을 그만 두고 곧바로 자기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바로 오리엔트 스타 로직스(OSL)이다. 2004년 7월 5일 OSL은 콘솔을 전문으로 하는 포워딩회사로 창립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4명의 임직원으로 창업한 OSL은 처음에는 많은 난관에 부닥쳤다. 유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자본금 3억원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사실 초기에는 그 두 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포워딩업무의 특성상 자금이 한번 순환하는데 3개월 정도가 걸린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요즘도 가끔 국적선사 출신 후배들이 포워딩 회사를 해보겠다고 자신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에는“초기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라”고 얘기해 준다고 했다.

오리엔트 스타 로직스(OSL)는 사업 초기에 영업은 잘 됐지만 자금이 회수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유 회장은 그 당시에 ‘흑자부도’라는 말을 많이 떠올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도 우연한 주변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게 된다. 유 회장은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행운아”라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회사 창립이 되고 몇 개월 후에, 연말이었는데 기계제작회사 D사에서 미국으로 가는 54개 컨테이너를 다른 포워더를 통해 제게 한진해운에 실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컨테이너 한 개 당 100달러를 더 주겠다면서 말이죠. 그래서 저는 실어는 주는데, 우리는 ‘캡’ 장사 하는 회사가 아니므로 100달러는 안 받겠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회사가 그 다음 화물의 선적을 부탁할 때, 운임 정산을 앞당겨서 아예 로딩할 때 결재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초기에 악화되었던 캐시플로어가 좋아지게 됐습니다. 이것이 가장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유영종 회장은 포워딩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국적선사 출신이 포워딩 회사를 차려서 성공했는가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실제로 국적선사 출신 후배들이 자신을 찾아와서 성공의 비결을 묻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런 때마다 유 회장은 “당신이 그 회사에서 근무할 때 선후배들과 어떤 좋은 관계를 맺었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라” 조언한다고 말했다. 결국 좋은 네트워크와 좋은 인간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상호 신뢰 또는 신용’이야말로 사업 성공의 키포인트라는 것이다.

유영종 회장은 사업 초기부터 주변의 많은 신뢰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NTL 한국대표 시절 좋은 관계를 맺어 두었던 화주들은 사업 초기부터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내로라는 대형하주들도 이 신설 회사에 한 달도 안되어 LCL카고를 몰아주기 시작했다. 일본의 화주들도 속속 거래 관계를 트게 됐다. 또한 친정인 한진해운측의 도움도 있었지만, 해외의 유명 포워더들이 OSL의 파트너 제의를 받아들였으며 때로는 먼저 파트너사가 되길 자청해 오기도 했다. 이런 일련 일들은 유 회장이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의 일본 주재원으로 10여년을 근무하면서 많은 인맥과 신뢰 관계를 쌓아놓은 덕분이라는 것이 주변인들의 평가다.

아울러 OSL은 2013년에 AEO(종합인증우수업체)와  2016년에 CELC(우수물류기업)를 취득해 대내외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좋은 해외 파트너사들과의 만남’이 올해로 창립 15주년을 맞이한 OSL의 성공요인이 됐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이는 유영종 회장의 개인적인 명성이나 신뢰감에 힘입는 바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하튼 회사 성장의 주춧돌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일본의 NYK 계열의 ‘유센’이나 중국, 홍콩, 미국 등의 파트너들은 규모가 큰 회사도 있지만, 해외의 파트너사들은 대부분은 ‘강소기업’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강소기업’을 지향하는 OSL과는 이래저래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들인 것이다. 유 회장은 “우리는 해외 네트워크를 형성할 때 그 국가에서 가장 믿을만한 회사하고만 파트너관계를 맺는다”고 밝혔다. 유 회장은 OSL이 월드와이드포워딩네트워크(WWFN)같은 국제 포워딩협회에 가입이 하고 있어서 세계 120개국의 포워더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앞으로도 유력한 해외의 포워더들과 파트너 관계를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창사 15주을 맞아 진행된 OSL 힐링캠프

하지만 OSL은 직접적인 해외 진출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유 회장은 그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의 포워딩 업무 여건이 해외 진출을 할 만큼 개선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기업들의 2자물류 행태나 대형 하주들의 직접적인 포워딩 업무 취급 등으로 인해 중소형 포워더가 대형 포워더로 성장하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말했다. 자국에서 화주들의 지원을 못 받는 상태에서 해외에 나가서 그쪽의 로컬업체들과 경쟁해 봐야 결과는 뻔하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이제는 정부가 이런 제도적인 모순을 해결하고 제3자물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육성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영종 회장이 얘기한 대로 기업의 성공에는 ‘신뢰’ 혹은 ‘신용’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OSL과 유 회장에게 있어서 하주들과의 신뢰 관계 형성은 성공의 핵심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영종 회장의 그와 같은 ‘신용 제일주의’는 화주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고객 제일주의’로 나타난다. 유회장은 “고객을 왕으로 모시고 정말 화주고객들에게 우리는 하인들처럼 봉사하는 정신으로 대하자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라고 말했다. 고객에 대한 끝없이 봉사하는 자세, 이것이야말로 비즈니스 성공의 요체라는 것이다.

OSL의 이런 고객 제일주의는 최근 ‘2시간 이내 회신하기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외의 고객 요구에 대해 2시간 이내에 답변이나 회신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 ‘2시간 이내 회신하기 운동’의 내용이다. 이 부분에 대해 유 회장은 “우리는 지금 스피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스페이스를 누가 먼저 잡느냐는 싸움에서 지게 되어 배가 떠나버리고 말면 우리의 상품을 팔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객들 요구에 빨리 부응하기 위해서는 빠른 회신을 해줘야만 합니다.”고 말했다.

OSL의 성공 요인 가운데 또 하나는 ‘CEO를 포함한 임직원들간의 소통 능력’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역시 유영종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관계가 있는 것이지만, 임직원들간의 ‘정보 공유’와 ‘원활한 소통’이 OSL의 자랑이라고 회사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에 대해 유영종 회장의 한진해운 후배이면서 현재 OSL 사장직을 맡고 있는 엄태만 사장은 “유 회장님께서 직원들이 회사 일을 자신의 일처럼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원할한 소통을 통해 서로 서로 믿고 일을 하니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OSL은 창립 15년만에 매출 약 280억원 및 상당액의 순이익을 창출하는 중견 포워더로 발돋움 했다. 콘솔 화물이 계속 증가할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영업으로 창출한 화물 취급량이 연간 3만 1000teu까지 늘어났다. 더구나 요즈음과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매출과 당기순이익이 매년 거의 15%씩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 회사의 자랑거리다. 콘솔을 전문으로 하는 포워더가 이러한 급성장을 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유영종 회장은 “엄태만 사장이 조인한 2015년 이후 전직원의 부단없는 노력으로 회사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잘 나가는 OSL’이지만 꼭 이루고 싶은 비원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사업이 날로 확장되고 외국 파트너들과의 관계도 더욱 긴밀해 지면서 부산항을 경유하는 화물이 늘어나서 부산신항 배후단지에 자체 창고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자체 창고를 가지고 있어야 경쟁력 있는 운임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는 OSL로서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항만 배후단지를 실수요자에게 배분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입니다. 실제 수요자가 아닌 사람들, 특히 창고업자가 배후단지 창고의 일정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화물을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수요자에게 배정을 해줘야 할 것입니다. 저희는 부산항에 이런 시설이 생긴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일본이나 북중국, 혹은 동남아쪽으로 수출입 되는 외국화물을 더 많이 유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외국의 파트너들과 FOB로 수출되는 화물을 C&F조건으로 바꾸는 작업 펴서 국적선사에 실어서 국적선 적취율을 높이는데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유 회장은 ‘실수요자에게 필요한 것을 줘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유영종 회장은 향후 사업 계획에 대해서 묻자 “자세한 것은 밝히기 어렵지만 중국쪽 파트너와 중국쪽 사업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사업은 남이 하지 않는 사업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앞으로 북한 비즈니스에도 주의를 집중해 나갈 생각임을 밝혔다.

“양주에서 원단 공장을 하는 사람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중국의 위해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한달에 70만원 줘야 하는데, 북한 근로자가 대부분인 단동으로 공장을 옯겼더니 30만원이면 되더라는 것입니다. 남북 관계가 잘 돼서 아예 북한에다가 공장을 만들게 되면 이런 사람들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남북한이 경제적으로 통합이 된다면 이 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평양에 우리의 현지법인을 세운다면, 제가 먼저 지점장으로 나가겠다고 늘 말합니다. 남이 안 하는 사업을 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해운업계에 발이 아주 넓다고 소문이 난 유영종 회장은 항상 유연한 대인 관계로 OSL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평양에 지점장으로라도 나가겠다’는 이런 진취적인 기상이 또 다른 OSL의 성공 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오리엔트 스타 로직스 유영종 회장 약력 >

△1948년 출생 △1937년- 1987년 대한항공 근무 / 홍콩 및 일본 지역본부 △1987년- 1992년 대한항공 그룹 한진해운 대한선주 인수, 일본지역 총괄담당 △ 1992년-1994년 ㈜한진해운 심사부장 △1995-1999년 ㈜한진해운 싱가포르 지점장 △1999년-2002년 ㈜ 한진해운 한국지역 영업담당 상무 △2003년 한진해운 상무이사 퇴임 △2003년-2004년 일본 NTL 한국대표 △2004년-현재 ㈜오리엔트 스타 로직스 대표이사 회장 △2016년- 현재 ㈜스타오션라인 회장 △2009년-현재 △한국국제물류협회 비상임 이사

한국해운신문 maritime@m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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