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金笠)과의 가상 대담

▲ 김문호 회장

-김문호(한일상선 회장, 한국예총 전문위원, 한국문협 해양문학 연구위원장)

金 : 선생님, 평강하신지요. 한양에 사는 서생 김가 인사 올립니다.

笠 : 어인 일이시오?

金 : 꼭 한 번 찾아뵈리라 해를 두고 벼르면서도 오늘에야 묵은 해태(懈怠)를 벗는 것 같습니다.

笠 : 마침 만추의 산색에 전신이 들쑤시던 참이라 반갑긴 하오만 그래 이 첩첩 두메까지 도대체 무슨 소관이시오.

金 : 그렇게 다그치시니 정작 드릴 말씀을 찾기가 어렵습니다만, 오면서 보니 이곳 영월(寧越)의 지명이 심상치 않습니다. 편하게 넘는 고을이라 했건만 영 그렇지 못합니다. 초입 소나기재에서 만나게 되는 옛 청령포의 애사(哀史)며 선생님의 사연이 그렇습니다. 선생님께서 개성에서 황혼축객(黃昏逐客)을 당하면서

     읍 이름은 열린 고을인데 대문은 어이 닫아걸며   邑號開城何閉門
     산은 솔 뫼라면서 어찌 땔나무가 없다느냐?        山名松嶽豈無柴

고 개탄하시던 일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笠 : 선생, 어찌 그리 꼴통이시오. 기왕지사의 이것저것을 공연히 떠올리지 말고 그냥 편히 지나가라는 융통으로 새기면 어디 덧이라도 나는 거요?

金 : 참으로 대단하신 순발력의 응변이십니다. 바로 그것이 선생님 35년 주유의 원형질이자 방편이 아니었을 런지요?

笠 :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 이 산중까지 오면서 빈손으로 왔소?

金 : 그럴 리가요. 치악산 생 막걸리에 진부령 황태포를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笠 : 그랬다면 진작 한 잔 따를 일 아니오. 제 아무리 타는 가을빛에 게걸이 났기로 자작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金 : 그야 그렇습지요. 선생님 체면에 지부지처는 안 될 일이지요.

笠 : 시방 뭐라고 했소?

金 : 아닙니다. 시정의 장삼이사들이 술잔을 앞에 두고 허물없이 주고받는 막말을 선생님 면전에서 망발하고 말았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笠 : 장삼이사 아니라 시정잡배면 어떻소. 그 허물없다는 말 한 번 들어봅시다.

金 : 사뢰지 못 할 말로, 지가 부어서 지가 처먹는다는 상소리입니다.

笠 : 지부지처라. 민초들의 애환이 갓 낚아 올린 잉어처럼 퍼덕이는 말이잖소. 내 진작 언문풍월이라고 하고 다니면서도 이만한 시어(詩語) 하나 건지지 못했음이 도리어 면괴스럽소. 바로 그 지부지처야말로 선생의 말마따나 내 일생 방랑의 방편이자 원동력이었으면서 말이오. 그러나 그 지부지처가 쉬운 노릇은 아니오. 갓 대신 삿갓이야 썼지만 그래도 상투에 도포자락 차림으로 잔치 집 마당귀의 중인환시 속에서 그야말로 지가 부어 지가 처먹는 일이잖소. 그렇지만 잔이 없으면 주전자 뚜껑으로라도 마지막 방울을 털어 마시고는 태연자약 용트림을 터뜨려야 되는 거요. 그런 연후라야 여로의 객고가 방랑으로 숙성되는 거요. 저 유명한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인들 지부지처의 다른 이름이 아니면 뭐겠소.

金 : 그래서 후세가 그를 두고 시선이며 주선으로 우러르는지요?

笠 : 그렇긴 하오만 그의 지부지처가 말 그대로 신선놀음은 아니었소. “달은 진작 술을 할 줄 모르고(月旣不解酒),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기 따라서 덩실거린다.(我舞影零亂)”는 구절이 그렇소. 어디 한 번 찬찬히 되짚어 보시오. 인사불성의 광태가 아니고서야 이만한 비애의 정경이 어디 있겠소. 그가 이 시를 쓴 것은 훈구모리배들의 모략으로 관직을 쫓겨나와 방황하던 때였고, 그런 그의 진면목은 연작의 다른 월하독작에서 요연하오. “수심은 넘치는데 술은 모자라고(愁多酒少), 그나마 술을 마시면 근심이 달아나느니.(酒傾愁不來)”라는 구절 말이오. 대저 극도의 슬픔은 우스개의 탈을 쓰는 법이오.

金 : 그것은 일면 선생님의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선생님께 드리워진 비애의 원천은 바로 홍경래의 반란사건이었지요. 할아버지(益淳), 아버지(安根), 선생님(炳淵) 삼대는 당시 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일 말고는 무소불위라던 안동 김씨 63년 세도의 핵심이자 주역이었던 장동 김문의 조순(祖淳), 좌근(左根), 병기(炳冀) 삼대와 집안이면서도 바로 그 사건으로 참변이었거든요. 선천(宣川) 부사 할아버지가 복주(伏誅)되시면서 할머니는 광주관영의 관비로, 아버지는 남해 귀양으로 풍비박산 멸문지화였지요. 영특한 총기로 가문의 촉망을 독점하던 선생님이 만 네 살 때였습니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편모슬하에서 성년으로 자란 선생님이 영월 동헌의 백일장에서 할아버지를 꾸짖고 욕하는 글로 장원을 하면서 천추의 죄인이 되는 나락의 운명이었지요. 그렇지만 선생님, 그때 후세의 평이 좋지도 않은 세도의 일원이기보다는 그들 압제부류를 희화하고 조롱하면서 만인의 시선이자 주선으로 민초들의 사랑을 받으시는 오늘이 오히려 다행 아닐 런지요?  

笠 : 남의 한 평생 만고풍상을 두고 손바닥 뒤집듯 말하는구려. 그러나 까마득 지난 일을 다시 들춰서 뭐 하겠소. 매사에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소.

金 : 선생님께서 첫 행운유수에 나서면서, “세상만사는 다 정해져 있는데(萬事皆有定) 덧없는 인간들이 공연히 바장인다(浮生空自忙)”고 읊으신 구절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마다 마음 같지 못 한 삶의 변명 내지 자위가 아닐 런지요. 선생님의 여럿 농세(弄世)의 구절에서도 그런 빛이 역력하거든요.

笠 :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들었다 놓았다하는 구려. 초면에 자못 당돌하오.

金 : 죄송합니다. 경거망동을 용서하십시오. 말씀도 낮추시고요.

笠 : 그건 그렇지 않소. 140여 년 후진에게 공대할 일이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생전의 나보다 연치가 더한 분에게 하대할 수도 없으니 그냥 이대로 편하게 합시다. 잔이 두어 순배 더 돌고 나면 스스럼이 잦아들 거요. 더구나 만산홍엽의 구추(九秋)에 주포까지 들고 찾아온 귀빈을 박대할 리야 더욱 없는 일 아니겠소. 그리고 선생, 혹시 망형우(忘形友)란 말 아시오? 지난날의 지사들이 서로 흠모하는 인품을 찾으면서 나이며 지위, 심지어는 반상의 신분까지도 털고 교환하던 일이 그것이오. 우리도 오늘은 그렇게 틉시다.

金 : 과연 소탈하십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 또한 격의를 덜고 사뢰겠습니다. 만산홍엽의 구추라는 말씀에 문득 선생님의 시 구월산이 떠오릅니다.

    작년 9월에 구월산을 다녀가고                 去年九月過九月
    금년 9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면서              今年九月過九月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다녀가니             年年九月過九月
    구월산 산색은 언재나 구월일세.               九月山色長九月

기껏 아홉 한문 글자로 이리도 절묘한 절구가 경이롭습니다. 죽장망혜 도포자락에 삿갓 괴나리봇짐의 선생님 뒷모습이 구월산 풍경(楓景) 속으로 스미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가을을 밝히시는군요.

笠 : 사철이 천 냥이라면 가을이 구백 냥이오. 쾌적한 날씨에 쪽빛 하늘 새털구름만으로도 가슴이 뛰지 않소? 만산홍엽에 송백이 깃들면서 ‘만홍총중수점록(萬紅叢中數点綠)’의 경지로 피어나면 이에 더할 풍광이 어디 있겠소. 그러나 내가 진정 가을을 꼽는 것은 결실과 수확의 계절이기 때문이오. 사시장천 생존에 허덕이는 이 나라 민초들이 그나마 호구(糊口)의 수심을 벗는 것이 가을과 겨울 두 철이오.

金 : 참으로 대단한 선생님의 민초 사랑입니다. 선생님의 유시(遺詩) 중 상당 편수가 민중시로 분류되는 소이인가 합니다. 선생님의 탄신 176주년이던 1983년에는 모스크바방송이 선생님을 소개하면서 “그의 시문학적 사명은 사회적 착취를 반대하는 이데올로기적 순정과 인간적인 낭만성, 예리한 풍자와 부드러운 유머감각”이라고 칭송했다더군요.

笠 : 보지도 듣지도 못 한 그딴 것 나는 모르오. 내가 유독 가을을 챙기는 또 한 가지는 우선 밥 빌어먹기가 편하다는 거요.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민초들의 문전에서 죽 한 그릇 빌기가 쉬운 줄 아시오?

金 : 기껏 요기 한 끼를 청하는 일을 두고 빌어먹는다는 말씀은 면전에서 듣기에 거북합니다. 더구나 선생님은 몇 배나 귀한 문장으로 보답하면서 초대까지 받으시는 주유천하였고요.

笠 : 그렇잖소. 어린 학동들에 호령하는 훈장이며 민초들에 군림하는 사또가 다 알량한 글줄로 빌어먹는 거요. 오늘날에 거들먹이는 학자니 고관들까지도 다 그런 거요. 제 손바닥 터지게 땅을 갈아 먹고사는 농사백성 말고는 모두가 매한가지요. 하긴 농부들조차도 더없이 너그러운 땅한테 빌어먹는다고 해야 할 거요.

金 : 거침없는 해학이자, 농세의 풍자입니다. 금강산을 향하시던 도중에 강원도의 산가에서 하룻밤을 유하시던 일이 있었지요.

     개다리 송판밥상에 희멀건 죽 한 그릇,           四脚松盤粥一器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떠도누나.            天光雲影共徘徊
     주인이여, 부디 무색해 하지 마소.               主人莫道無顔色
     나는 청산이 물에 잠기는 경치를 사랑한다오.     吾愛靑山倒水來

笠 : 첩첩산중 저물녘의 외딴집이었소. 노모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막 저녁을 들려는 참에 내가 사립을 들어선 거요. 당황한 내외가 부엌에서 한참을 궁리하고도 도리 없이 나물죽 한 그릇을 받쳐내고는 귀한 손님에게 물 음식이라고 무안해하던 선한 인심이었소. 자기들은 죽 두 그릇으로 셋의 허기를 달래면서 말이오. 이튿날 아침, 감자가 태반인 강조밥으로 조반을 대접받고 나서면서, 남은 평생을 착한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소. 한 치의 더도 덜도 없는 그들의 일원이기로 작심했소. 그런 연유로 해서 내가 가을을 유독 챙기는지도 모를 일이오.

金 : 선생님이 금강산에 첫 발을 디디신 것도 가을이었고, 그곳에서 삼추와 삼동을 지내시는 동안에는 민초들의 애환을 읊으신 시편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입석암(立石庵) 스님과의 대귀 절편들이 선생님 서정시의 백미였습니다.

    달도 희고 눈도 희고 천지가 온통 새하얀데        月白雪白天地白
    산도 깊고 밤도 깊어 고향생각 더욱 깊구나.        山深夜深客愁深

눈 덮인 금강산의 월야삼경을 돌아가지 못 할 고향생각으로 지새시는 정경이 아련합니다. 그러면서 심심파적으로 언문을 곁들인 파격의 대귀들이 신묘합니다.

    가죽나무 부러진 틈으로 달빛은 마루로 비춰 들고,     假僧木折月照軒
    참 미나리나물 맛을 보니 산이 봄을 잉태 했구나.       眞婦菜味山姙春

선생님의 파격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4자, 3자로 되어있는 칠언의 구절을 3자, 4자로 바꾸는가 하면 파자에 변조, 파운(破韻)까지 자유자재하면서 미증유의 감칠맛을 더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의 이빨을 뽑겠다고 덤비던 못된(?) 스님조차 선생님께 시선의 칭호를 바치면서 작별을 아쉬워했던 것이지요.

    백 척 높은 붉은 바위절벽 계수나무 아래         百尺丹巖桂樹下
    사립을 닫아걸고 지낸 지 오래였더니,             柴門久不向人開
    오늘 아침 홀연히 시선이 지나가면서             今朝遇忽詩仙過
    학을 타고 암자로 오셨기에 시 한 수 빌었네.    喚鶴着庵乞句來.

笠 : 선생, 가당치도 않은 말장난을 삼가시오. 술이라면 얻어먹는 것이 고작인 주제에 주선이 무엇이며, 글 한 줄 간수하지 못 하는 내게 시선이 될 말이오? 나는 그저 헐벗은 민초들의 틈에서 그들의 일원으로 살려는 것뿐이었소. 그러면서 가끔 세상과 나를 조롱하다 보면 술이 당기고 계집의 살 냄새가 절실하기도 했던 거요.

金 : 물꼬를 트셨으니 말이지, 선생님의 여자 후리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추석전야의 함흥 근교에서 수절청상에게 수작한 칠언율시가  압권이었습니다.
   
    나그네 잠자리가 스산하니 꿈자리도 어지러운데      客枕蕭條夢不仁
    하늘 가득 서늘한 달빛이 빈 옆자리로 쏟아지네.      滿天霜月照吾隣   
    송죽의 푸르른 기상이 천고의 정절이라지만           綠竹蒼松千古節
    도리화 붉고 하얀 자태야 한 철 봄이 고작인 것.      紅桃白李片時春
    왕소군의 백옥미색은 오랑캐 땅의 한 줌 흙이요       昭君玉骨胡地土
    양귀비의 화룡월태는 마외 언덕의 티끌이었네.        貴妃花容馬嵬塵  
    세간의 모든 이치가 이와 같거늘                          世間物理皆如此
    이 밤에 속고름 한 번 풀기를 저어하지 마소서.       莫惜今夜解汝?

이리도 절절한 호소에 어느 수절청상의 강철 빗장인들 녹아내리지 않을 런지요. 귀뚜리도 울어 새는 추야삼경에 바람벽 하나를 서로 사이에 두고 말이지요.

笠 : 별의별걸 다 들쑤시시오.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은 일이었소. 중추 열나흘의 달이 두둥실 뜨는 저물녘의 첩첩산중 외딴집이었소. 아들형제를 40여 리 함흥 큰댁의 추석차례에 보내고 혼자 남아서 집을 보는 여인이 미인이었소. 4년 전에 상배를 하고 지금껏 수절 중이라는 중년여인의 소복 자태가 산중 달빛 아래서 곱고 청초해서 애잔했소. 외짝 날개로 파닥이는 산새처럼 가여운 그녀에게 수절의 멍에를 덧씌우는 세상이 미우면서 그녀의 소복 굴레를 내 손으로 벗겨주고 싶은 충동아 나도 몰래 나를 사로잡았소. 그녀 또한 글줄이나 하는 주제에 명절의 객지 문전을 기웃대는 내 사연이 궁금하면서 불쌍했을 거요. 동병이 아니어도 상련이야 인지상정 아니겠소. 바로 그 측은지심(仁)이야말로 무릇 은애(恩愛)의 근원인 거요. 사뭇 피폐한 내 인생에도 천(天時),지(地理), 인(人才) 삼재가 착오 없이 합일하는 한 번의 묘는 있었던 모양이오. 남김없이 내어주고 전부를 받으면서 주는 젓과 받는 것이 둘 아닌, 지금껏 터득 못 한 음양조화의 묘경이었소.

金 : 어렵사리 약조가 서자, 두 분은 목간(沐間)에서 심신을 정제한 뒤, 부인이 준비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는 황초 비단금침 속에서 혼례초야에 방불한 합환의 예를 치르셨다면서요. 연후의 어느 날, 과수부인이 옷 한 벌을 지어 보내면서 적잖은 돈까지 동봉했고요. 하룻밤에 만리성을 쌓듯 선생님이 써 주신 호소문으로 남편 무덤의 4년 산송(山訟)을 해결하면서 배상 조로 받은 전액을 선생님 노자로 보낸 것이었고, 인편은 그날 저녁 큰댁의 추석차례로 집을 비웠던 형제 중 맏이였고요.

笠 : 함흥 사또의 식객으로 겨울을 지내던 때였소. 어찌 알았는지 인편이 다녀가긴 했소만, 선생의 말이 사실인지는 나도 모르오. 그간 사람들이 저마다의 흥미로 덧댄 일도 있으려니와 나 또한 실없는 기시감에 사로잡힌 경우도 있겠기에 말이오. 지금껏 2백여 성상을 호사가들의 중구난방으로 굴러온 입방아잖소. 그리고 선생의 지적 중 어느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딱 한 번, 하늘과 땅과 둘만의 비밀로 파묻자던 그날 밤의 약조와 맹세가 영 허망해지는 젓 아니오.

金 : 청상과수에게서 맞들인 선생님의 여자 후리기는 가히 능수의 경지였습니다. 기생 가련(可憐)을 작업하는 모습은 화밀선(花蜜腺)을 파고드는 호접의 촉수처럼 집요하기까지 합니다.

    가련한 행색에 가련한 신세                       可憐行色可憐身
    가련의 집 문전으로 가련을 찾아와서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한 이 마음을 가련에게 전하니              可憐此心傳可憐
    가련이 내 가련한 마음을 받아 주더라.         可憐能知可憐心

笠 : 함흥사또를 따라서 지방 유생들과의 술자리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갓 스물 미색의 기생이었소. 초면인 내게 유난스레 살갑다가 유생들의 심한 구박을 받으면서도 살랑거리는 그녀의 처지가 측은했소. 나 또한 사또의 비위나 맞추면서 산촌의 진사 나부랭이들과 글줄을 섞고 앉은 신세가 그녀에 다를 바 없다는 자괴심에 한 잔을 걸쳤던 것이오. 야반 갈증으로 눈을 떴더니 사향 냄새가 짙은 여인네의 보료 속이었고, 가련의 매끄러운 알몸이 내 가슴팍에서 새근대고 있었소. 그리고 그 글은  인사불성의 내가 가련의 집에 들던 밤에 그녀에게 써 주고 잊어버린 것이었소.

金 : 선생님께 시쳇말로 애인이 있었다면 유독 가련인가 싶습니다. 그녀와의 사랑묘사는 지금 읽어도 감칠맛이 동하거든요.
   
    동창 아래 가는 허리 껴안고 밤새 사랑을 하니      抱臥東窓弄未休
    교태 반, 수줍음 반을 발그레 머금었었네.           半含嬌態半含羞
    너도 내가 좋으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低音暗問相思否
    대답 대신 금비녀를 매만지며 고개만 까닥까닥.    手整金簪小點頭
 
아는 이 없는 산중으로 가서 밭이나 갈며 함께 살자고 매달리던 가련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던 선생님의 모습이 매정했습니다. 두견화 피면 안산으로 꽃구경 가자고 벼르다가, 두견화 피어나자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가련의 마음을 헤아려나 보셨는지요?

笠 : 선생,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작별의 한 마디를 입에 담기 위해 몇 밤을 뒤척였는지 아시오? 그렇지만 내가 삿갓을 쓰고 고향처자를 등진 일이 무엇이었소? 풍찬노숙으로 남은 목숨을 바수다가 어느 객지 길섶에 쓰러져서 무간지옥으로 떨어진다 해도 만분지일의 죗값도 하지 못 할 내 숙명의 비애를 암시하지 않았소? 그런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도라곤 아파도 외면하는 것뿐이었소. 

金 : 그러나 선생님께서 북청, 길주, 명천, 단천을 주유하고 나서 귀로에 찾았을 때는 가련이 이미 죽고 없었지요. 선생님과 작별하던 바로 그 봄에 두견화 안산의 소나무에다 목을 맨 것이지요. 이름처럼 박복한 태생에 실낱만한 희망의 끈을 선생님께 걸었던 그녀로서는 더 이상 삶의 의지며 기력이 없었던 거지요. 사람들은 그녀가 서방인가 낭군인가를 이별하고 상사병으로 죽었다고 했더군요. 선생님의 처지가 아무리 그렇기로 그건 바로 꽃다운 목숨 하나를 앗는 일이었습니다.

笠 : 거기에는 내가 할 말이 없소. 나 역시 비통했소. 속죄의 고행 길에 도리어 작죄를 보탠 미망이었으니 말이오. 그로 하여 절감했소. 천지의 미물일지라도 정을 두거나 키우는 일이 그중 무겁다는 것을.

金 : 그러나 선생님, 너무 자학하지는 마십시오. 지하의 가련이도 언약을 잊지 않고 찾아 주신 선생님이 고마우면서 행복했을 겁니다. 잊어진 여자가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하다는 말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날 이후 선생님의 여자편력이 노류장화의 희롱을 넘지 않은 것도 다 그런 소이인가 합니다. 단천의 기생 딸이자 규수시인 노처녀의 머리를 얹으면서,

    털이 무성하고 속이 넓으니 필시 타인이 다녀갔구나.   毛深內闊必過人       
    냇가의 버들 숲은 비가 오자 않아도 자라고                溪邊楊柳無雨長
    뒤뜰의 익은 밤은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는 법이오.   後園黃栗不蜂折

라고 놀리고 받던 일이며, 안변의 구두쇠 영감이 과부 며느리의 유종을 빨아서 치료한다는 소문에,

    시아비는 위를 빨고 며느리는 아래를 빨고             父嚥其上婦嚥其下
    위아래가 다르지만 그 맛은 한 가지                     上下不同其味則同
    시아비는 둘을 빨고 며느리는 하나를 빨고             父嚥其二婦嚥其一
    둘과 하나가 다르지만 그 맛이야 매한가지.            一二不同其味則同

등의 사례가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새벽잠을 주무시는 바람에 이웃집의 제사 음복을 놓치고는 분풀이로 칠언절구를 하시면서, 긱 절의 끝 석 자를, X 오는 밤(十五夜), 내 X지(乃早知), X두질(用刀疾), X공알(習恭謁)로 까지 희화하신 일은 선생님의 체면에 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笠 : 그것은 당시의 사대부들이 저들끼리 돌려가며 보던 춘화와 같은 외담(猥談)에 지나지 않는 거요. 헐벗은 민초들이 그냥 한 번 웃으라고 해 본 장난이오. 신라의 원효는 나보다 천 년도 더 전에 “하늘을 고일 만 한 기둥을 다듬으려니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주지 않겠나(我斫持天柱 誰假沒柯斧)?”라고 음담하며 남천 변 요석궁을 배회하지 않았소? 그리고 선생, 하늘도 쳐다보지 못 하는 내 주제에 체면이라는 것이 뭐요? 삿갓이 내 하늘이자 지붕이었고 들판 잠자리의 이불이었잖소.

金 : 제가 선생님의 존명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이었습니다. 전기도 없던 면소재지 마을에 무성영화나 약장수가 들어오면 스피커의 선전 고성이 한낮부터 산촌을 뒤흔들었지요. 그럴 때면 “죽장에 삿갓 쓰고”로 시작하는 선생님의 노래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로서는 죽장이며 방랑이 뭔지 몰랐지만 2절의 끝 소절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까지 완창하곤 했지요.

대처의 고등학교로 진학했을 때는 국영 라디오 방송의 정오뉴스에 이은 직장음악이 끝나면 바로 선생님의 북한방랑기였습니다. 당시 선생님으로 분한 오 숭녕 아니면 오정환 성우의 구성진 목청이 10년도 넘게 방방곡곡 국민들의 심금에 스며들면서 선생님은 은연중 이 나라의 시선으로 추대되신 겁니다. 국내는 물론 이 세상 어디에도 선생님만큼 다수의 민초들에게 친밀한 시인은 없을 겁니다.

笠 : 그딴 것 또한 내 알 바 아니니 제발 시선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거두시오. 이만한 취기에도 듣기에 거북하오.

金 :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함경도의 산중설경을 읊으신 시가 있지요.

    하늘의 상제가 붕어하셨나, 땅의 임금이 돌아가셨나?   天皇崩乎地皇崩
    온 세상 산과 나무들이 하나같은 소복일세.                萬樹千山皆被服
    내일 아침 해님이 문상 길에 나선다면                      明日若使陽來弔
    집집의 처마마다 눈물을 좍좍 흘리겠지.                   家家簷前淚滴滴

산촌의 티 없는 설경과 초가지붕 처마로 쏟아지는 햇살의 수체화가 맑고도 정겹습니다. 거기에 언제라도 펑펑 울어버리고만 싶은 선생님의 영원한 소복, 삿갓의 애수가 곁들면서 서정의 극치라 할 만합니다. 그러면서 저 이 백의 “백발 삼천 장(丈)”이니 “아침에 푸른 실타래 같던 머리칼이 저녁에 파뿌리” 등의 과장과는 격조가 판이합니다.

통속, 민중, 생활, 걸인, 방랑, 풍류, 풍자, 파격, 해학의 시로 분류되면서 오늘까지 전하는 선생님의 시가 6백여 편이라 합니다. 지금도 새로운 유시(遺詩)들이 발굴되면서 편수가 늘어난다 합니다. 35년 방랑에 하루 한 편씩만 잡아도 당초에는 1만2천 편에 족했으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笠 : 그 또한 나는 모르는 일이오. 내 진작 내 손으로 간직한 글이라고는 단 한 줄도 없다지 않았소? 사시장천 걸식유랑의 봇짐에는 갈아입을 옷 한 벌, 짚신 두어 켤레만으로도 거추장한 법이오.

金 : 바로 그 점이야말로 선생님께서 명실상부 이 나라의 시선이라는 사실의 근저입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방방곡곡에 흩뿌리셨던 시편들이 지금껏 이 나라 민초들의 애환 속에서 피어나고 있거든요. 권문세가의 문갑 속에서나 잠자는 포식난의(飽食煖衣)들의 음풍농월 나부랭이들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것이지요.

    하늘이 구만 리라 해도 머리 들기 어려웠고         九萬長天擧頭難
    땅이 삼천리라지만 다리 한 번 펴지 못 했네.        三千地闊未足伸
    오경에 누각을 오르는 건 달구경 하자는 것 아니며   五更登樓非玩月
    사흘을 내리 굶는 것도 신선이 되려함 아니다.       三朝僻穀不求仙

어느 누구도 따라하지 못 할 선생님만의 고행이었습니다. 계룡산 아래 마을까지 찾아와서 어머니가 위독하다면서 귀가를 간청하는 아드님을 허언으로 따돌리시는 모습은 매정을 넘어 비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주의 한라산과 추사의 족적까지 살피시고 안동의 도산서원 아래서는 3년여의 훈장을 지내셨더군요. 이때만은 하등의 우스개를 남기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이 나라 참 선비에의 배례였는지요?

笠 : 선생,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 했소. 나는 그저 한 포기 잡초를 닮은 자연인으로 살다가 가려 했을 따름이오. 그러나 그 또한 쉽지 않았소. 사람은 결코 자연일 수 없으니 결국은 이 땅에 폐만 끼치고 떠나는 운명인가 싶소. 하긴 무구 순박한 농사꾼조차도 땅에 빌어먹는 거라고 내가 말했던가요.

金 : 선생님의 아호를 ‘난초동산(蘭皐)’이라 하셨습니다. 대궁 하나에 꽃이 하나면 난(一莖一花蘭)이요, 한 대궁에 여럿 꽃이면 혜(一莖多花蕙)라고 했으니 선생님은 정녕 이 나라 토종의 한란이셨습니다. 부귀명문 태생이었지만, 민초들의 풀밭으로 이식되어 그들과 함께 우레에 놀라고 비바람에 쏠리면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야생의 난초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 방방곡곡에 난향의 포자를 날려 보내고 발아시킨 시선이셨지요. 저 이백의 허풍에도 쓸 모서리는 있어서 선생님의 경우에 적중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술 권하는 글(將進酒辭)’에서 호언했던 두어 구절이지요.

    고금에 잘난 인간들 다 어디로 사라져 갔느냐?        古今賢達皆寂寞
    마실 줄 아는 사람만이 그 이름을 남기는 법,          唯有飮者留其名
    귀한 술 단지에 공연한 달빛 내려앉게 하지마라.       莫使金樽空對月

지금도 고단한 민초들의 한 잔 뒤 노래방에서 어김없이 따라붙는 선생님의 노래처럼,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껄껄대다 떠나는 삶이 그래도 이 땅에 폐는 덜 끼친다는 것인지요. 시선은 바로 주선의 다른 이름이면서 말입니다. 

선생님, 내년에도 구추가 타오를 때쯤 찾아뵙겠습니다. 명복을 누리소서.(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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