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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회고록/정도경영의 師表 박종규 회장(46)

기사승인 [1946호] 2019.08.13  13: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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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베이트 절대 만들지 않는 정도경영 실천

   
▲ 박종규 회장

다들 잘 알다시피, 우리 회사는 회사와 경영을 대물림 하지 않고 그야말로 전문경영인제도를 도입해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들, 심지어 나의 친구들까지도 그런 형태로 경영을 해서는 회사 경영이 엉망이 될 것이라고 충고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전문경영인제도 뿐만 아니라 종업원지주제를 확산시키고, 더 나아가 지금은 ‘성과공유제’까지 도입해 종업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바른경영, 정도경영을 실천해 나가면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고 회사는 무궁무진하게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현재 나는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지 아주 오래 됐다. 대주주가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후임자들에게 한번 경영을 맡겼으면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나의 후임자들이 너무나 훌륭하게 잘 해주어서 회사는 나날이 발전해 나가고 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믿고 맡겼으면 끝까지 신뢰를 가지고 지켜봐야 하고 절대로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회사의 창업주나 오너들은 경영을 아랫사람들에게 위임하지 못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리베이트를 주고 비자금을 조성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밑의 사람들에게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회사가 그러한 부정한 거래와는 본래부터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전 직원이 다 알 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 회사는 아예 B장부 자체가 없다. 결산에 대해서는 사장도 바꾸자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 회사 규정에 전결권이 경리부장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리베이트 거래와 같은 부정한 거래가 없으면 밑의 사람들에게 믿고 맡길 수가 있는 것이다.

정말 우리 회사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리베이트 관행이다. 나는 1969년 12월 창업 이후 지금까지 뒷거래를 하지 않고 사업을 해왔다. 리베이트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리베이트를 주려고 하면 비자금을 조성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이중장부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데서 부정과 비리가 싹트게 되고, 직원들을 타락시켜 결국 회사가 병들게 되는 것이다. 나는 평생 사업을 통해 로비나 뒷거래를 하지 않고 오직 기술과 실력만으로 경쟁해서도 이길 수 있고, 회사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벗어난 거래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준수해 왔다. “손해를 보더라도 원치은 지킨다”는 것은 전작의 책 제목이기도 하지만, 변함없는 우리 회사의 모토인 것이다.

사실 ‘리베이트를 절대로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을 때 나는 이런 원칙 때문에 사업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주위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회사가 망할 것”이라고 얘기도 하고, 간부직원들도 “영업직원들을 너무 닦달하지 말고 좀 풀어주자”는 건의를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나쁜 버릇이 들면 나중에 고치기 쉽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원칙만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강하게 원칙을 고수하고 지켜 나갔던 것이 나중에는 오히려 메리트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업 초기부터 ‘밀수 근절’에 발 벗고 나서

‘리베이트가 없는 거래’가 육상 임직원들에게 적용되는 지침이라고 하면, 해상직원들, 즉 선원들에게는 ‘밀수가 없는 승선’이 꼭 지켜야 할 근무 지침이다.

앞서서 예를 들었던 바 있지만, 과거 우리 해운업계에서는 선원들의 밀수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해 물의를 일으키곤 했다. 내가 대한해운공사 시절에 엉터리 ‘밀수 방지 대책’을 만들었다가 후회했던 적이 있다고 밝혔지만,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나는 밀수만은 근절해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했었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첫 번째 도입선박인 제1케미캐리호가 일본으로 첫 출항하는 날 예고없이 선원들의 소지품 검사를 해 과다하게 현금을 보유한 선원의 돈을 일시적으로 압수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사업초기부터 밀수근절에 대해서 엄청난 신경을 쓰고 단속을 심하게 했지만, 밀수를 완전히 근절시키는 데는 5-6년이나 걸렸다. 그 만큼 70년대 중반까지는 선원들에게 부수입이 짭짤한 밀수는 강력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밀수를 할 경우 회사에서 아무리 엄한 처벌을 한다고 해도 위반하는 선원들은 있게 마련이다. 나의 먼 친척 동생 벌 되는 사람은 화장품을 밀수하다가 걸려서 회사를 그만두게 됐으며, 어떤 일등 항해사는 시계를 밀수하다가 걸려서 결국은 교도소에 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밀수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서히 줄어들어서 어느 틈엔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선박들로부터 밀수가 완전히 없어지면서 선원들은 엉뚱한 일로 고충을 겪는 일도 있었다. 배가 항구에 입항하면 검역 검사, 세관 검사 등을 해상에서 받아야 하는데, 우리 배들은 검사관들에게 인기가 없다 보니까 항상 승선 검사가 늦어지는 것이었다. 새벽 5시에 입항 배가 11시가 넘어서 승선검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입항을 했는데도 하선을 하지 못하고 장시간 기다리는 선원들로서는 참으로 화가 나는 일이지만, 참아내야만 했다.

선원들이 밀수를 하는 선박은 안전 운항을 보장할 수가 없다. 밀수하는 선원들은 배의 안전보다도 자기가 밀수하는 물품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반면 밀수가 없는 선박은 사고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우리 회사의 경우는 밀수가 근절 되면서 선박 사고율이 떨어졌고, 그 때문에 화주들은 우리 회사를 더욱 신뢰하게 됐고, 따라서 운임이 좀 높더라도 우리 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선박의 안전항행을 위해 그밖에도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그 중 하나가 초창기부터 강조해 온 금연운동이다. 먼저 경영진이 금연을 단행했고, 한 배의 선원 전체가 금연에 성공했을 때는 특별 수당까지 지급했다. 해운업계에서는 금연시 특별 수당 지급은 처음이라서 한참 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하튼 화물의 안전한 수송으로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한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한국해운신문 maritime@m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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