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국제상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 이기병 박사(lgb1461@naver.com)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 개발기업이자 필름을 통해 카메라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한때는 위대한 혁신기업이었지만 2012년 파산해 지금은 사라진 기업이 있다. 바로 코닥(Kodak)이다. 그래서 코닥모멘트(Kodak moment)라는 용어는 과거의 성공에 사로잡혀 안락한 방관자(Comfortable Inaction)에 빠졌을 때 몰락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최근 제26차 한중 해운회담이 종료됐다. 기존 선사들의 운항권 보호와 우선권을 보장하고 중국 선사들의 시장 진입을 화물 적재율 기준으로 일단 막았다는 것이 주요 골자라 볼 수 있다. 항로 개방은 선사들의 존폐 위기와도 연결될 수 있어 매년 한중 해운회담에서 초미의 관심사였고 한국측에선 시황 회복과 경쟁력 확보를 가진 후 개방이라는 전략적인 시간 확보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시기상의 문제일 뿐 어떤 형식과 방법이든 한중 항로는 향후 개방돼 한국과 중국의 항만을 자유자재로 입·출항하는 한중 해운 자유화 시대가 올 것이다.

한때 한중 항로는 돈벌이가 되는 블루오션(Blue Ocean)으로 인식됐고 개별 기업은 물론 해운 산업 전체가 침체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항로 개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경향이 일부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영악화로 생존을 걱정하며 코닥모멘트를 남의 일이 아닌 한번쯤 새겨볼 만한, 전략적으로 많은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다. 그렇다면 국적선사들은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첫째, 선사들의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내부적으론 비용구조 및 비효율을 개선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고 문화를 바꿔야 한다. 상명하복과 윗분들 지시사항을 수첩에 기록하기 바쁜 문화가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과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지고 소통과 협력이 촉진되며 창의성이 보장되는 민첩한 조직으로 변신해 선사의 무형 자산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항상 문제의 본질은 ‘나’로부터 있다. 경복궁이 무너졌다고 흥선대원군 무덤을 찾아가 따질 수는 없지 않은가?

둘째, 선사간 협업과 공유 확대가 필요하다. 실제적 방법으로 국내 컨테이너 운송시 항차 일정이 다른 카페리 선사간 공동으로 계약해 가격 협상력을 증가시키고 공동창고와 CY를 활용하며 필요하면 상호 선복 교환과 컨테이너 박스 공동 사용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홈페이지조차 없으며 일반인들이 정보 열람 등 접근하기 어려운 현재의 소극적인 운용방식에서 벗어나 한중카페리협회나 한국해운연합 등의 조직을 활용해 대외활동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협회·단체가 나서서 화주, 정부, 연구자, 양국 국민들에게 널리 홍보하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고객 가치 제고다. 최근 화물은 적시 조달(just in time) 방식으로 소량으로 긴급하게 움직이므로 Hot-Delivery 서비스 제공 확대가 요구된다. 고객과 시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그 누구에게나 서비스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포용적 마케팅(Inclusive marketing)이 필요하다. 결국 전통적인 관념을 벗어나 고객이 찾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고객이 좋아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선사가 시장에서 이길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평택에도 항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배를 타고 중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하는 숨겨진 고객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무지하다고 흉만 볼 것인가? 그런 고객들을 발굴할 것인가? 대응방식은 선사 몫이다.

넷째,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활성화와 선박금융 정책의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해운업의 선순환은 선박의 발주로 시작해 조선·철강·금융의 부흥, 안정적인 운송과 운임 획득을 통한 선사 안정화로 연결된다. 그 출발점이 선박금융이다. 민간의 참여율이 적고 정부 계열 국책은행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의 선박금융시장에서 자본 시장의 역할은 조선업 대비 매우 부진했다.

크라우드 펀딩은 아직은 다소 생소한 분야이지만 신규 자본시장 조달·육성과 함께 세계 각국은 새로운 자금조달의 방법으로 활성화 및 정책적 제도 개선에 힘쓰고 있다. 유엔미래 보고서 2015는 크라우드 펀딩 시장이 주식시장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했고 일본은 ‘해운·해사산업 재생 크라우드 펀딩’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을 도입한 이탈리아도 요트를 통한 레저장비 산업 경쟁력을 도모한 성공한 사례들을 발표했다. 한국도 미미하지만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대출형 크라우드 펀딩 위주로 선박담보 투자방식과 운영자금 조달 등의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2002년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선박투자(선박펀드)회사 제도를 도입해 해운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선박금융 역량을 확보한 바 있다. 최근 정부는 크라우드 펀딩 규제를 완화시키고 있다. 행위자에 대한 규제는 최소화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다수의 시장 여유자금이 ‘탈규제 현상’을 보여 수익 경쟁을 일으켜 투자 활성화의 촉매제가 돼야 한다.

해운사 입장에선 선대 최신화와 선복량 확대가 필요하고 결국은 새로운 공급원의 투자비용 조달금을 찾게 된다. 궁극적으로 자본이 넘쳐나는 시대의 전략이 요구된다. 무난한 정책 지원은 무난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고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섯째,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다. 한중 카페리선사의 50:50 공동투자 원칙은 이미 무너졌고 이를 정부가 개입해 균등화시키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렵게 이익이 나도 중국과 배분하게 되면 별로 남는 것도 없고 단기성과에 급급해 미래를 준비하고 장기적 이해관계를 도모하기도 어렵다. 카페리선사의 경우 지분 불균형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보다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중국보다 시장 지배력을 잃고 있는 한국측 주주들이 인수합병과 전략적 투자를 통해 자본력 있는 새로운 국내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도록 밑거름을 조성해야 한다. 배당에만 관심 있고 투자 여력도, 열정도 없는 ‘선발자의 함정’에 빠진 ‘늙은 자본’들의 퇴로를 만들어 주고 ‘후발자 이득(Late Mover's Advantage)’을 기대하고 투자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젊은 자본’들이 필요하다. 포항-울릉도항로의 대저해운의 대주주 대저건설과 팬오션의 대주주 하림 같은 회사들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는 애기다. ‘신의 한수’로 평가받으면서 말이다.

여섯째, 승자독식이다. 국적외항선사수는 약 170개사 정도이며 한중항로에는 카페리선사, 한중컨테이너선사 등 50여개사들이 경쟁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정부 주도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면서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고 비용과 운임을 떨어뜨려 경쟁사들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가능성 있는 기업만 키워주고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들며 가장 강한 기업들을 연결시켜 하나로 묶어 역량을 집중시켜 성공하는 스타기업들을 배출해야 한다. 효율을 극대화하고 확실한 이익을 추구하며 덩치를 키우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초글로벌기업들의 공통점들이 이런 것이다. 이를 위해 중복 항로의 조정 작업 등 결국 통합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한중 카페리 항로의 예를 들면 소석률은 저조하다. 통상 항로별로 1척의 선박이 공급되는데 운송수요가 선박 투입의 최소 단위인 1척보다 적기 때문이다. 재고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산 계획량과 시장 판매량의 차이 때문이다. 생산 계획량을 화물 및 여객의 수송능력이라 하고 시장판매량을 수송실적이라 대입한다면 2018년 전체 한중 카페리 화물의 소석률은 43.6%이며 56.4%의 재고가 있고 여객은 58.2%의 승선률에 41.8%의 재고를 가지고 있다. 화물 및 여객 평균 가동률(Utilization Rate)은 50.9%이고 재고는 49.1%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오늘날 한중 항로의 현주소다.

선제적(proactive) 혁신이 필요하다. 또한 지금의 시장과 비즈니스 모델은 도태되고 진부화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저주(Curse of Incumbency)를 벗어난 과감한 통합의 도전이 필요하다.

필자는 오랜기간 한중카페리선사에서 근무했고 국제 해운·물류 전공으로 학위를 취득했다. 안타깝지만 배는 하늘로 갈 수 없고, 하기 싫지만 해야 되는 일이 있다. 위에 주장한 여섯 가지 일들이 그런 일들이다.

한일항로 중심으로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관련 점검을 해운·물류업 전반에 걸쳐 총체적으로 조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한일 항로의 화주 동향, 여객·화물 물동량 변화 추세를 꾸준히 체크할 필요가 있다.

해운·물류인들이 많이 오고 가는 종로 네거리 영풍문고 앞에 전봉준 장군 동상이 있다. 전봉준 장군이 서울로 압송돼 감옥에 수감되셨는데 동상이 서 있는 지금의 그 자리다. 평소 뵐 때는 장군의 눈빛이 영롱하셨는데 최근 한·일 관계 때문에 그런지 노(怒)하신 것 같다.

갑오농민전쟁이 동학 농민혁명으로 변경되며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은 인내천(人乃天)의 사상과 민주주의의 계승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녹두꽃의 꽃말은 강인과 단단함이다. 돌이켜보면 대원군은 개국(開國)을 거부하고 쇄국(鎖國)을 통해 조선이라는 나라의 플랫폼을 지키려고 했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보내자, 우리 마음속의 대원군을. 그리고 이제는 뿌리자, 이 땅에 많은 녹두꽃 같은 기업들을. 전 세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넘사벽의 기업들로… 빨리 장군님의 예전 눈빛을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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