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터치웰, IHS Markit 전무

▲ 피터 터치웰 전무

컨테이너 선사들의 디지털 물류 서비스 계약이 블록버스터급 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CMA CGM과 MSC가 소유한 물류 정보 플랫폼 트랙센스(Traxens)는 또 다른 대형 선사의 지지가 필요했고, 최고의 선물은 물론 세계 최대 해운선사인 머스크(Maersk)가 참여하는 것이었다. 머스크 입장에서는 자사의 블록체인이자 IBM과의 물류 가시성(visibility) 합작 투자 플랫폼인 트레이드렌즈(TradeLens)에 다른 선사들의 참여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특히 IBM의 한 임원은 지난 가을 다른 선사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트레이드렌즈가) "상품화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주말, 불과 24시간 남짓 동안 계약이 연이어 성사되었음이 발표되면서 트랙센스와 트레이드렌즈의 앞날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제네바, 마르세이유, 코펜하겐 등에서 이루어진 논의가 최종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포함되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제휴 발표의 동기가 무엇인지보다, 이처럼 거대 선사들이 애초에 거래를 체결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시기가 왜 지금인지가 중요하다.

이는 선사와 스타트업 혹은 다른 기술회사 사이의 제휴가 아니라 선사와 선사 사이의 거래이다. 거래에 합의한 선사들은 다른 점도 많지만, 선박을 운영하고 자산을 관리하는 기업이라는 측면에서 SWOT 분석이 거의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입장이다.

선사들이 운임 전쟁으로 상대 기업을 몰아내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머스크의 Soren Skou CEO는 지난 5월 24일 1분기 수익 결산에서 머스크가 아시아-유럽 무역에서 운임 전쟁을 촉발했다는 의견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3년여 동안 역사적으로 가장 활발히 일어난 선사 인수합병 움직임에서 살아남은 거대 선사들 사이에는 함께 가라앉거나 함께 헤엄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라앉을 가능성 혹은 적어도 물류서비스 디지털화라는 흐름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흐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사의 역할이 항만 사이를 이동하며 상품화된 선복량을 제공하고, 중개업체를 통해 판매하며, 수익은 구매 및 판매 시점, 용선, 비용 절감 그리고 운을 통해 얻는 것으로 한정된다는 뜻이다.

선사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이 이런 방식으로 미래를 살길 바랐더라면, 10년 전 파생 계약을 사용해 불리한 스팟 화물 운임 조치에 대비할 기회를 그렇게 즉각 거절하진 않았을 것이다.

고객의 공급망에 가치를 창출하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보상 측면에서 훨씬 더 크다.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다. 사실 선사들이 최첨단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비용 제약으로 인해 투자 능력 또한 약화되었지만, 오늘날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포워더 조차도 사실 최첨단을 달리고 있진 않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선사들에게 INTTRA 사례와 같은 과거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있다는 점도 다행이다. (INTTRA : 선사들이 기술 회사에 대항하여 설립한 플랫폼으로 전 세계 예약 물동량의 25% 이상을 담당했지만, 결국 기술 회사에 소유 및 지배권이 넘어감)

선사들의 현재 상황을 보면, 기존의 포워더 혹은 신생 디지털 포워더를 따라잡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물류업에 점차 큰 관심을 보이는 아마존 같은 기업들과 같은 분야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물론 전 세계 시장이 많은 기업이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규모가 크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아마존이 자사가 사용할 용도로 클라우드를 만들고 아마존 웹 서비스(Amazon Web Services)를 통해 이를 서비스로 판매했다면, 클라우드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아마존이 국제 물류업이라고 똑같이 못하겠는가?

기존의 선사들에게 이는 경종을 울리는 상황이다. 아마존은 2018년 머스크보다 6배 이상 많은 2410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기록했다. 새티시 진덜(Satish Jindal) 애널리스트는 아마존이 세계에서 가장 큰 3PL이라며, DHL보다 규모가 크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위협은 아마존의 뛰어난 데이터 관리이다. 선사들이 선박에 투자하는 대신 데이터 및 통합 서비스 제공으로 투자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 배경을 설명해주는 이유다.

머스크가 컨테이너 물류업의 통합 선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판도가 완전히 달라질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선사가 어디까지 변화를 감수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향후 미래의 판도를 결정할 중요한 기준은 자산의 가치가 될 것이다. 이는 선박뿐만 아니라 해양 터미널, 그리고 결정적으로 데이터를 통제하고 그로부터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다. 이러한 역할을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선사들은 지금까지 고객이 화물 운송 정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무료로 데이터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UPS가 최종 소비자에게 화물 운송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과 선사들이 중개업체에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중개업체는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사들도 점차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화물 정보 소유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두고 풀리지 않는 질문에 봉착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트레이드렌즈를 통해 블록체인 분야에서 선두를 지키고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물류 서비스 가시성 확보를 위해 들이는 노력을 선사들이 물류 서비스에서 고객 가치를 창출하며 미래의 역할을 확보하기 위해 뛰어드는 경쟁적 전략이라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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