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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事문학/저녁노을 바라보며(106)

기사승인 [1937호] 2019.06.11  17: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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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시비 제막

화사한 봄날, 친구 시비詩碑 제막식에 참가했다.

시인은 나와 국민학교 동기동창이다. 우리는 해방 1년 전, 1944년 3월에 하동국민학교 38회로 입학했다. 선생님들은 모두 일본인이었고 식민지 교육을 받았다.

2학년 때 광복을 맞아 멋모르고 기뻐 뛰어놀았다. 졸업하던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되었다. 나라는 초토화되고 가정은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우리는 역사의 굴곡마다 희로애락을 맞보며 75년을 함께한 죽마고우다.

시인은 실업계 명문 경남상고를 졸업하고 경희대학 국문과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광섭 시인의 추천으로 1960년에 자유문학에 등단한 원로시인이다.

국민학교 동기동창들이 추진하고 하동문화원장이 주관하여 2019년 5월 23일 고향에서 시비 제막식이 성대하게 거행했다. 섬호정 아래 섬진강이 내려다보는 오룡정 물꽃정원에 화강암 3m 높이의 웅장한 시비가 늠름하게 우뚝 섰다.

              河東浦口
                                                           心道 정득복

   지리산 뻗어내린 섬진강이
   오백 리 길 물산을 헤치며
   동남으로 흐르고
   화개천 맑은 물이
   은어 비늘 반짝이며
   공중으로 비상하네
   하동포구 머리 위에
   섬호정이 걸려있고
   보름달 휘영청 밝은 밤에
   백사장이 펼쳐 누워
   송림 푸른 그림자를
   산자락으로 휘어잡네

   ……중략……

   갈사리 푸른 갈대
   김바리 숲을 이루고
   노량바다 갈매기는 오고 가며 나는데
   하동포구 팔십리에 젖은 내 가슴
   하늘보다 더 짙푸르네

<하동포구>는 섬진강 팔십 리 물길 구비 구비에 정 시인의 옛 추억들이 서려있다. 5월의 따사한 햇볕이 화강암 시비에 내려앉아 정 시인의 애틋한 추억들이 반짝인다.

동기동창들 25명을 비롯하여 정 시인이 재직했던 내무부 전직 공무원 50명과 친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산야는 푸르러 자태를 뽐내고, 섬진강 맑은 물은 유유히 흐르는 계절의 여왕 5월에 고향에 시비를 건립한 정 시인이 존경스럽다.

시비는 정 시인의 선친 정송치 어르신 가문의 영광이다. 이를 두고 자식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도란 건가! 자손들이 시비를 잘 보존하여 대대로 가문의 성지가 되길 기원한다.

성웅 충무공께서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고서 순국하신 노량바다를 딛고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 기대어 섬진강을 품에 껴안은 하동은 시인 묵객을 많이 배출했다. 산은 자주빛으로 푸르르고 물은 맑게 흐르는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이라서일까!

정 시인도 고향을 칭송하고 자연의 숭고함을 예찬하는 순수한 시가 주류를 이룬다. <뿌리 내리는 땅>과 <첫사랑> 등 시집 9권을 발간했다. 경희대문학상 등 문학상도 7개를 수상했다.

그러나 정 시인은 건설부와 내무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느라 전업창작 기간이 길지 않다. 인생을 살다 보면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시비 제막을 계기로, 갯벌에서 진주조개를 캐내듯 옛날 주옥같은 시를 캐내어 갈고닦고, 저녁노을이 불게 물던 황혼에 숙성된 시를 창작하여 최후의 시집을 발간해 대시인으로 추앙되길 염원한다.

시비 제막식이 끝나고 우리 동창들은 인접한 남해군으로 갔다. 노량대교 아래 바닷가에서 취하도록 잔치가 벌어졌다. 80을 훌쩍 넘긴 할배 할매들이 마지막 불꽃을 노래와 춤으로 태웠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치는지! 향수鄕愁에 취해서일까. 아니면 덧없이 흘러간 인생에 대한 서러움이 북받쳐서일까. 제막식 뒤풀이가 이렇게 멋들어지게 끝났다.

다음날, 우리 동창들은 다시 만날 기약 없이 아쉽게도 하동, 진주, 부산 그리고 서울로 뿔뿔이 헤어졌다.

   
 

한국해운신문 maritime@m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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