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 박태원 박사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업체 난립으로 인한 과당경쟁으로 불황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쓰러지는 선사들이 줄을 이었다. 이에 정부는 개별선사를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목적으로 1984년에 기존 63개 해운선사를 17개로 통폐합하는 해운산업합리화계획을 단행했다.

그 당시 6개 그룹선사가 통폐합에 의해 합병을 하고, 14개 그룹선사는 2년 내에 합병을 전제로 운영선사 형태로 통합을 추진한 것이다. 정부는 해운산업합리화 방안에 참여하는 선사들에 대해 금융지원을 계속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2017년 2월 한진해운 파산을 계기로 2018년 4월에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이 수립되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선박의 신조 발주가 증가하고, 수출입 화물의 운송량과 매출액이 늘어나는 등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회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중소형 선사들의 구조조정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최근 한국해운연합(KSP)을 통한 아시아 역내항로 선사들의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이 컨테이너선사업 통합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는 두 회사가 지난해 4월 체결한 ‘해운사업 재건을 위한 KSP 2단계 구조 혁신 기본합의서’의 후속 조치로서, 1단계로 흥아해운의 컨테이너선 부문과 장금상선의 동남아항로 사업부문을 물적 분할해 통합법인을 설립한 뒤 2단계로 장금상선의 나머지 정기선 부문을 통합법인과 합치는 방식이다. 올해 10월 1일까지 1단계 통합을 마친 뒤 내년 말까지 2단계 통합을 마무리하게 된다.

두 회사는 이날 통합 합의서와 별도로 한국해양진흥공사와 컨테이너사업 통합을 위한 금융지원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해양진흥공사는 원활한 통합 이행과 통합 법인의 적정 자본 규모 확충을 위해 금융을 제공할 예정이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장금상선과 흥아해운 간의 통합은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재편돼 경쟁력을 회복해 나가는 데 초석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해운재건을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합병만으로 아시아 역내항로의 선박량 과잉에서 촉발된 우리 선사들의 경영위기가 극복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는 두 회사의 합병 시너지효과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중소 선사 11곳은 통합에서 빠져 독자적인 생존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시아 역내항로를 운항하는 한국 컨테이너 선사들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 아시아 역내항로를 운항 중인 컨테이너 선사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1년 전에 비해 반 토막 났으며, 영업이익률도 곤두박질 쳤다.

올해 이후에도 아시아 역내항로의 상황은 호전된 기미가 보이지 않고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거대한 글로벌 선사인 머스크라인과 양밍해운, 그리고 에버그린 등도 원양항로와 연계해 아시아 역내항로의 시장점유율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더욱이 이달 말부터 일본계 대만선사인 인터아시아라인이 대만 완하이라인과의 공동운항으로 인천에서 베트남 다낭과 호찌민 항로에 신규 취항하는 등 외국 선사들의 시장참여도 차츰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아시아 역내항로의 시장 진입 증가는 글로벌 원양선사들의 선대 전환배치 등과 맞물려 공급과잉을 한층 심화시킬 것이다.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통합이 규모의 경제를 통한 효율성 제고로 어느 정도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아시아 역내항로를 운항하고 있는 여타 10여개 우리 국적선사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통합의 저주’가 우려된다.

특히 글로벌 선사들이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우는 상황에서 구조조정 없이 규모가 작은 국내 선사들이 각자도생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 선사들이 아시아 역내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글로벌 선사와 경쟁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국내 선사 간 출혈 경쟁을 멈춰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컨테이너선사업 통합만으로 아시아 역내항로의 안정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두 회사의 통합은 흥아해운의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그야말로 단기적인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해양수산부는 보다 근원적인 아시아 역내항로의 수급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KSP 선사들 다수가 참여하는 특단의 구조조정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두 회사만의 통합이 가져오는 또 다른 재앙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비극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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