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고려대 로스쿨 교수, 전 선장)

▲ 김인현 교수
해방후 약 30년간 필자의 선대(先代)의 가업은 수산업이었다. 출항한 어선이 바다밑의 고기를 잡아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출항한 어선이 고기를 잡지 못하고 빈 배로 입항하기를 거듭하면서 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높은 수산업에 100% 의존한 선대의 가업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이런 수산업과 비교할 때 해운업은 실패할 수 없는 사업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무역이 있는 한 화물이 있고 화물이 있는 한 선주는 운송계약을 체결하여 운송인이 되어 운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수출입화물이 충분히 있는 국가이다. 바다 물 속에 고기가 얼마나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산업을 하는 것과 비교할 때 해운업은 안정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해운은 국제시장에 오픈된 시장이기 때문에 우리 정기선사가 외국의 유수한 정기선사와 경쟁을 해서 화주로부터 화물을 받아와야하는 경쟁하에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전체 국가 경쟁력차원에서 볼 때 우리 화물은 외국정기선사에게 가장 적게 내어주고, 우리 선사들이 외국화물을 가장 많이 가져오는 구도가 되어야 함은 자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외항정기선사는 현재 아주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화주가 국적선사에 화물을 맡기는 비율이 국적선적취율이다. 철광석이나 석탄과 같은 드라이 벌크의 경우 72.8%로 높은 반면 정기선사가 실어나르는 컨테이너 화물의 경우 원양항로의 경우는 19.1%로 낮은 수준이다. 위와 같은 국제경쟁에서 우리 정기선사가 뒤쳐져서 국내화주로부터 선호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자국 외항정기선사에 일본 화물이 운송되는 비율이 50%이상이 되어서 안정적인 영업이 가능하다.

지난 10월 말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는 컨테이너 화물의 국적선 적취율을 제고하기 위해 주요 선화주가 처음으로 손을 맞잡고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대형 컨테이너 화주라고 할 수 있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 LG그룹의 판토스, 삼성그룹의 삼성SDS 등 물류자회사들이 상생협약에 동참한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여러 다양한 내용에 대한 협약이 체결되었다. 국적선 적취율을 높이기 위한 일환임은 물론이다. 보다 근본적인 상생방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물류자회사들은 이들의 모회사와 운송계약을 체결한 계약운송인이지만 선박을 보유하지 않아서 직접운송을 해줄 수 없는 입장이다. 운송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들에게는 반드시 외항정기선사인 실제운송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들을 NVOCC(무선박운항개품운송인)이라고 부른다.

물류자회사가 개입된 운송에는 제1운송인(계약운송인)으로서 물류자회사 그리고 제2운송인(실제운송인)으로서 외항정기선사가 존재하게 된다. 제1운송계약에서 물류자회사는 운송인이 되지만 제2운송계약에서는 자신이 화주가 된다. 모기업으로부터 운송을 인수한 물류자회사는 자신이 받은 운임의 일부를 운송에 대한 하청을 해준 외항정기선사에게 건네주게 된다.

20년 전만하더라도 모기업은 모두 실제운송인과 운송계약을 체결하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물류자회사와 먼저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이 원청으로서 실제운송인에게 운송에 대한 하청을 주는 것이다. 물류자회사는 모회사의 물량을 수의계약형태로 대량으로 가지기 때문에 화주로서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모회사 이외의 중소화주들의 화물을 집화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더 경쟁력을 가진 머스크 등 외국정기선사와 운송계약을 선호하면 우리 정기선사들의 운송물량이 적어지고, 경쟁력이 처지는 우리 정기선사에게 운임을 낮출 것을 지시하면 우리 정기선사의 수입이 적어지므로 적자가 나게 된다. 우리 국적 외항정기선사의 적취율이 낮고 운임수준이 낮은 이유도 일부 여기에 있다고 판단된다.

물류자회사는 비록 선박을 보유하지 않은 채로 운송사업을 하지만 우리 상법상 이들도 엄연한 운송인으로서 인정되어 포장당책임제한 등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상법 제797조). 자신의 출발점이 되는 운송주선인(포워드)들은 책임제한의 이익을 누리지 못한다. 물류자회사는 모기업으로부터 안정된 화물을 받아서 안정되게 높은 영업이익율을 시현하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외항정기선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운송을 완성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이 선박을 소유하거나 용선하여 선주가 되어야한다. 이는 많은 투자와 리스크를 수반하게 된다. 물류자회사들이 쉽게 선주가 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외항정기선사의 안정적인 경영이 자신들의 경영의 밑바탕이 되므로 상생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본다. 현재 우리 정기선사의 낮은 우리 화물 적취율은 이런 인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류자회사와 외항정기선사는 애초부터 같은 운송인으로서 동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법적지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서로 남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생각된다(해상법 교과서에서 물류자회사를 계약운송인으로 설명하게 된 것은 불과 1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부터 이들은 운송주선인(포워드)으로 출발하면서 곧 계약운송인이 되었음에도(1991년 상법개정시선박소유자만 운송인이 될 수있던 것을 누구가 운송인이 될 수 있도록 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이들을 진정한 운송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또 이들도 대한민국의 운송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는 자각이 부족하였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나아가야한다.

그 방안으로서 필자는 이들 물류자회사들을 완전한 운송인으로 인정하여 보호하자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들은 운송주선업자(포워드)와 운송인의 지위를 동시에 갖는다. 그렇지만, 이들의 영업의 대부분은 계약운송인이 되는 것이다. 이들이 모회사와 운송계약을 체결하면 계약운송인이 되어 상법상 운송인으로서 의무를 부담하고 상법상 인정된 각종 혜택을 인정받게 된다. 운송인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해운법상의 외항정기화물운송사업자가 아니다. 해운법은 선박을 보유하는 운송인만 운송사업자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도 선박을 소유하거나 용선해있지는 않지만 해상운송사업자임에 틀림없다. 해운법에 이들이 운송업자로 등록할 길을 열어주어야한다. 해운법에 무선박 외항정기화물운송사업자의 개념을 정립하고, 운송인으로 등록하게 한다. 그리하여 해운법의 각종혜택(공정거래법보다 완화된 경쟁법상 각종제도) 의무(운임의 공표 및 준수등)가 적용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나아가 선주협회도 이름을 가칭 한국선주운송인협회 혹은 한국해운산업협회로 개칭하여 이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한다.

톤세 제도는 해운법상 해상운송사업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물류자회사들이 해운법상 운송사업자로 등록하게 되면 톤세 제도의 수혜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톤세 제도는 당해 운송업자가 운항하는 우리 선박을 기준으로 법인세 대신 선박 보유톤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경기가 좋을 때에는 상당한 절세의 혜택을 보게 된다. 물류자회사는 선박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이 제2운송계약으로 실제로 화물운송에 투입된 우리 외항정기선사들의 선박의 톤수 혹은 컨테이너 박스의 수량을 기준으로 법인세 대신 선박톤세를 계산하면 될 것이다. 이들이 외국정기선사와 운송계약을 체결한 경우는 톤세 제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니 만큼 이 제도는 우리 외항정기선사를 선호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인센티브가 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세법에 따라 톤세제도로서 이익을 보는 만큼 우리 외항정기선사들을 운송인으로 선택하는 비율도 높아질 것이다(만약, 물류자회사가 국적 정기선사에 운송계약을 체결하는 비율이 올라가지 않는 경우에는 취급물량의 일정 %이상을 반드시 국적 정기선사와 체결할 것을 조건으로 할 수있다). 무엇보다 물류자회사들은 같은 선주운송인협회의 회원으로 한솥밥을 먹는 입장이 되면 국적 정기외항선사와 서로 위해주는 관계가 되어 진정한 상생이 될 것이다.

이들이 모회사로부터 받는 운임중 외항정기선사로 나가지 않는 부분은 해운산업의 매출로 잡히게 되어 현재 년간 해운매출액 30조원도 상당한 액수만큼(약 5조원) 증액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해운산업의 파이가 그 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류자회사도 경쟁력을 갖추어 DHL과 같은 세계적인 물류회사로 성장할 계기가 마련될 것이고, 우리 외항정기선사도 안정적인 화물물량과 적정한 운임의 보장으로 예측 가능한 영업을 하면서 안정되어갈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선화주상생의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길이 수산업과 다른 해운업의 장점을 살려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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