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능인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 박태원 박사
2005년 4월에 김위찬·르네 마보안이 저술한 『블루오션 전략』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블루오션 전략은 기업으로 하여금 경쟁이 무의미한 비경쟁 시장공간을 창출함으로써 유혈경쟁의 레드오션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게 한다. 즉, 경쟁자를 벤치마킹하거나 줄어드는 수요를 경쟁업체와 나누는 대신, 수요를 늘리고 경쟁으로부터 벗어나는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기존 수요에서 보다 큰 점유율을 얻기 위해 경쟁자를 능가하려 애쓴다. 시장 참가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수익과 성장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진다. 애써 개발한 상품은 흔한 일상품이 되고 목을 죄는 경쟁으로 시장은 유혈의 붉은 바다로 변한다.

한 목장이 있다. 주인이 없는 공유지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집에 있던 소를 데리고 나와 이 목장에서 기르기 시작했다. 목장 주인이 없으니 사람들은 점점 경쟁적으로 소를 데리고 나왔다. 한 사람이 열 마리를 데려오자, 이웃 사람은 스무 마리를 데려왔다. 어떤 사람은 소를 마구잡이로 번식시켜 목장에 풀어놓기까지 했다. 목장은 소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너무 많은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바람에 목장은 황폐해지고, 결국 소들도 먹을 것이 없어져 굶어 죽게 되었다.

이는 생물학자 가렛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을 말한다. 주인이 따로 없는 공동 방목장에서는 농부들이 경쟁적으로 더 많은 소를 끌고 나오는 것이 이득이므로 그 결과 방목장은 곧 황폐화되고 만다는 걸 경고하는 개념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점에 실제로 일어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초지를 분할 소유하고 각자의 초지에 울타리를 치는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이다.

제한된 자원을 둘러싸고 포식자가 너무 많이 존재하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특히 그 자원이 공유 자원이면 더욱 그렇다. 공유 자원은 어떤 공동의 강제적 규칙이 없다면 많은 이들의 무임승차 때문에 결국 파괴되고 고갈된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경합성이 있으면서 비배재성을 갖고 있는 재화에서 일어나는 시장실패로 공동체 모두가 사용할 자원을 시장에 맡겨두면 쉽게 고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급과잉이 심화되면서 아시아 역내항로 선사들이 위기를 맞은 지 오래다. 그 동안 한일항로와 한중항로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선사들이 블루오션을 찾아 하나 둘 ‘동남아항로’로 진입하면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선대를 늘리고 영업력을 집중하면서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한일항로의 경우 우리나라 선사들은 시장안정화를 위해 이른바 선적 상한제(실링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중항로도 한국과 중국 간의 합의로 영업권을 부여받은 특정선사만이 운항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시장의 공급조절기능의 작동이 가능하다. 물론 일본의 통합선사인 ONE의 한일항로 진입 전망과 한중항로의 점진적 개방 등 불확실성이 잔존하고 있지만 두 항로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비해 동남아항로의 경쟁양상은 매우 심각하다. 그 동안 아시아 역내 물동량의 증가세에 편승하여 블루오션으로 여겨졌던 동남아항로의 시장참여자들이 앞 다투어 선대를 늘려왔다. 여기에 글로벌 원양선사들의 선대 전환배치 등으로 인한 시장 진입 증가로 공급과잉이 한층 심화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선사 ONE과 대만 선사 완하이(Wan Hai), 그리고 중국 선사 SITC 등의 시장 참여가 확대되면서 동남아 항로는 그야말로 출혈경쟁의 붉은 바다가 되고 말았다. 향후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글로벌 선사들의 시장 참여가 늘어나면서 아시아 역내 해운시장은 더욱 더 공급과잉에 신음하는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는 지난 4월초 발표한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통해 2022년까지 해운매출액 51조원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3대 추진 방향으로 △ 경쟁력 있는 서비스·운임에 기반을 둔 안정적 화물 확보 △ 저비용·고효율 선박 확충 △ 지속적 해운 혁신을 통한 경영 안정 등을 제시했다. 특히 해양수산부장관은 정책브리핑을 통해 “해운시장의 변동성을 꼼꼼히 체크하여 정확한 시황정보 제공과 함께 선박투자 컨설팅, 재무상황의 점검, 운임·환율 등의 리스크 관리를 지원하며, 중장기적으로 해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운임선도 거래시장의 조성도 계획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백척간두에 서있는 우리나라 해운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제시한 해운 재건의 로드맵이 차질 없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의 확고부동한 정책적 추진의지와 실천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해운연합(KSP)을 통한 아시아 역내항로 선사들의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이 조속히 마무리되고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이는 소수의 선사를 중심으로 통합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만이 공유지의 비극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해운산업을 살리는 유일무이한 ‘선택과 집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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