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경영학 박사/인천해사고 산학협력취업부장)

▲ 김동훈 인천해사고 산학협력취업부장
선사 「TOP 2 또는 TOP 4」의 선원정책으로
국적선대 초급 해기사까지 외국인으로 대체

초급 해기사 승선 교육 없이 고급 해기사 양성 안돼
오래 지속된 해기 전승 외면한 ‘해기사 패싱’ 막아야

패싱(Passing)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쓰인다. 최근 ‘패싱 공화국’이라는 유명 신문의 사설 기사를 읽고 필자는 작금의 해운 부활 정책은 ‘해기사 패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리아 패싱’, ‘재팬 패싱’, ‘차이나 패싱’, 심지어 사람의 이름과 연관지어 ‘○○○ 패싱’이라는 단어가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패싱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정차해야 할 정류장에 운송수단이 “지나쳐 버린”과 같이 개인, 단체나 국가 간 따위에서 열외(列外) 취급을 당하는 경우를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대게 무시, 왕따 등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불린다.

처음 등장한 패싱이라는 단어는 1929년 간행된 미국의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여류작가 낼라 라슨의 장편 소설의 제목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인종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면서 혼혈 인종들의 비극을 조명한 소설이다.

비교적 최근에 인용된 패싱이라는 단어는 1998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건너뛰고, 중국만 방문하고 돌아간 상황을 일본 언론들이 ‘재팬 패싱’이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즉 일본을 오지 않고 건너뛰었다는 의미로 매스컴에 등장했다. 한국 언론에서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이슈에서 한국이 빠진 채 논의되는 현상을 빗대어 ‘코리아 패싱’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필자는 10년 이상 장기 불황에 허덕이는 해운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지난 2018년 4월 정부가 발표한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살펴보고 이런 생각을 가졌다. ‘해기사 패싱’, 특히 ‘초급 상선사관 패싱’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핵심 내용은 경쟁력 있는 선박 확충을 통해 향후 해운산업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해양진흥공사를 통해 선사들이 적기에 경쟁력 있는 선박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해운정책이다.

해운업을 살리는데 선박 확보만 잘 이루어지면 가능한 일인가? 의구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해운의 3요소는 선원, 선박, 화물이다. 해운의 3요소를 선박, 화물, 항만이라고 주장하는 소수의 학자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수많은 “해운실무” 교재에는 해운의 3요소를 선원, 선박, 화물이라고 적시하고 있어 이에 따라 교육을 한다.

해운업 부활을 위한 정책이라면 해운의 당사자이며 하나의 축인 해양 전문 인력 양성 즉, 해기사의 확보 문제가 필수적일 텐데 이에 대한 대책이 빠졌다. 선원 확보 방안이 없다는 뜻이다. 결과론적으로 이는 오랜 기간 지속된 해기 전승을 외면한 ‘해기사 패싱’, 특히 ‘초급 상선사관(Junior officer) 패싱’ 사태를 낳고 있다.

우리 정부가 지정한 필수선대 약 80척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선박1)(외항선 1,050척, 내항 2,030척)에서 한국 선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TOP 2 또는 TOP 4」라는 선사들의 선원정책 때문이다. 한국 선박에 「TOP 2」로 일컫는 선장과 기관장을 제외하면 모조리 외국인 선원이 승선해 있다.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에 따라 국적선사의 선박 확충과 어려운 해운경영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1차로 실시한 선박 건조와 S&LB2) 등의 수요 조사에서 54척이 신청되는 등 해운 재건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에 실시한 1차 선박 확충 신청 현황을 살펴보면 선종은 컨테이너선 4척, 벌크선 17척, 탱커선 10척, 기타선 5척으로 다양하며, 전체 선가로는 1조 4,142억원 수준이다. 이 중에는 LNG 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을 장착한 선박도 2척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S&LB 공모에도 11개사에서 컨테이너선 4척, 벌크선 3척, 탱커선 11척 총 18척이 신청해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선사의 높은 관심이 표출되었다.3)

이러한 변화는 선박 확보 부문에서 청신호다. 그러면 해운 3요소 중 다른 하나인 선원의 확보 즉, 해기사 양성 분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 선원양성 교육기관4)에서 배출되는 해기사는 매년 약 1,400여명이다. 적은 인원이 아니다. 최근 4년 사이에 해양대 승선학과 입학정원이 약 1.5배 정도 증원됐다. 제주해사고 신설도 검토 중이다. 증원을 시킨 명분은 해기사의 수급 부족이다. 실제로 5년 미만의 승무경력을 가진 인원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때문에 줄어든 인원수만큼 초급 해기사의 공급 인원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증원된 수치는 국적선대에 한국인 선원을 배승시킨다는 기본원칙을 전제로 하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선사들의 「TOP 2 또는 TOP 4」의 선원정책으로 초급 해기사까지 모조리 외국인 선원으로 대체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해기사는 초과 공급 상태로 보인다. 이러한 해기사의 초과 공급 상태는 결과적으로 해기사의 수준과 가치를 하락시킬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해기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은 전액 국비로 양성된다. 앞서 언급했듯 해양대의 입학정원 증원은 선사들의 요청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선사들은 우리나라 선원 고용은 줄이고 외국인 선원을 늘리는 정반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 국비 장학생들이 졸업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 실업자로 내몰리고 있다.

해운산업의 재건을 위해 선박 확보가 필수적이라면 확보된 선박에 승선시킬 선원에 대한 수요 파악도 중요한 요소이다. 늘어나는 한국선박에 외국인 해기사를 늘리는 선사의 태도는 유행하는 신조어로 ‘해기사 패싱’ 사태를 불러오고 있다. 필자는 해기사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이러한 정책은 필연 ‘패싱’ 사태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이를 제어하려는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아 불안감을 더욱 커진다. 선원 확보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별반 달라질 게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해운 경제의 판세를 읽으려면 분(分) 단위로 세계 해운의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급변하는 해운 환경에 중요한 움직임과 중요하지 않은 움직임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해운 재건 계획에는 선원, 선박, 화물이라는 3요소가 필연적으로 상호 선순환의 고리로 움직여야 한다. 이 3요소는 우리나라의 해운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필수 요소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어느 한 방향으로만 편중이 심화되어 불균형을 야기할 뿐이다.

‘No crew, No shipping’ 이라는 말이 있다. 우수한 선원이 없으면 해운 강국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다. 일본 외항선사인 한 선주가 했던 말로 기억된다. 일본에는 해기사 양성 교육기관이 사라져 앞으로 일본 해운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앞서 설명한 3요소가 상호 선순환 구조로 맞아 움직일 때 우리가 목표로 하는 해운 강국은 달성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대로 간다면 해운업 스스로 4차 산업 혁명에 대처하기는 역부족이다.

해운산업 재건을 위해 우수한 해기사를 양성하고 장기 승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이다. 또한 이러한 해양산업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해양 전문 인력 양성은 더더욱 중요하다.


1) 한국선주협회, 한국해운조합에 등록된 외항 및 내항 화물운송 사업을 영위하는 선박 척수이다.

2) Sale & Lease Back(S&LB)의 약어로 선사의 선박을 인수(매입)한 후 선사에 재용선해 유동성을 지원하는 사업을 말한다.

3) http://www.maritime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979.

4) 우리나라 상선 해기사 양성기관은 대졸 해기사를 양성하는 한국해양대와 목포해양대, 고졸 해기사를 양성하는 부산해사고, 인천해사고가 있으며, 해운시장의 규모에 따라 탄력적으로 해기사를 배출하는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의 오션 폴리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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