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밀러, Fairplay 편집장

▲ 그레그 밀러 편집장
유조선 시장에 악재가 연속이다. 화물은 적은데 선박은 너무 많다. 운임은 손익분기점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시장 분위기도 암울하다. 한 척에 9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초대형유조선(VLCC)의 발주 적기는 과연 언제일까?

추측에 근거한 경기대응적 발주라는 오래된 전통은 여전히 건재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이 투기적 전략의 중심에는 해운 경기에 일정한 흐름이 있다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투자 전략이지만 사실은 신조에 가깝다.

투자자들의 움직임으로 볼 때, 마치 계절의 변화처럼 불가피한 자연의 흐름으로 해운 경기 사이클이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봄에는 바닥을 쳤던 운임이 반등하고, 낙관론이 개화하듯 펼쳐지며, '자본'이라는 나비가 날아와 '성장'이라는 꽃에서 수분이 이루어지고, 선박 발주량이 증가한다. 여름에는 운임이 끓어오르며, 선주의 해안 계좌로 거금이 흘러들어오고, 심지어 적재량도 늘어난다. 가을이면 적재량 과잉으로 수익이 맥을 못 추고 투자도 시들해진다. 겨울이 시작되면 운임은 급감하고 파산이 줄을 이으며, 적재량도 줄어들고, 다음 봄을 위한 시장 재정비에 들어간다.

이러한 경기 흐름을 염두에 둔다면, 고전적인 경기대응적 전략은 한겨울에 선박을 구매해서 한여름 무더위가 끝나기 바로 전에 되파는 것이 될 터다. 만약 현재 시황처럼 VLCC 운임이 최악이라면 지금이 겨울인 셈이고 따라서 지금 발주하는 것이 최적일 것이다.

해운 경기를 계절의 변화로 파악하려는 작업은 분명 무리가 있지만 편리하게도 종종 무시된다. 계절 변화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때 지구 축이 기울어진 상태로 돌기 때문에 나타나는 예측 가능한 결과다. 하지만 해운 경기는 자연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내린 결정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따라서 해운업의 각 '계절'의 기간은 예측할 수 없으며, '내려간 것은 반등하기 마련'이라는 흔한 정설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이와 같은 정설을 퍼트리며 성공적으로 협상을 중개하는 사람들은 수수료를 챙기지만 말이다.)

수십 년에 걸친 해운 경기 흐름을 나타낸 지표는 사계절의 온도 변화 흐름을 나타낸 지표와 흡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조선 경기의 최저점이라고 판단해 VLCC의 투기성 발주를 고려하는 투자자들은 수천 번 실행한 동전 던지기 결과를 정리한 도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전 던지기 역시 올라갔다 내려가는 곡선의 흐름을 보인다. 스팟 운임, 자산 가치, 주가 등의 흐름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렇다면 동전 던지기를 경기 흐름을 고려한 투자 기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VLCC 부문에 안 좋은 소식은 오늘날 신조선 건조를 지지하는 주장이 단지 경기 흐름 면에서 매력적인 조선소 가격 책정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이유로는 1) 일단 낮은 운임으로 인해 VLCC 폐기 비율이 높다. 2) 2020년 발효되는 황산화물 배출 규제는 탈황장치인 스크러버를 장착한 VLCC에 막강한 경쟁적 우위를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한다. 3) OPEC 원유 생산량 감소로 야기된 제한적 수요는 건조를 마친 VLCC가 인도되기 훨씬 전에 끝날 확률이 높아 원유 수송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4) 신조선 발주 대신 중고선을 구매하는 경우 선주는 현재 낮은 운임 때문에 당장 '네거티브 캐리(negative carry)'로 인한 손실 및 환경규제 준수를 위한 설계 변경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된다. 5) 아시아 조선소에서 VLCC 발주할 시 다수의 금융 옵션이 존재하지만, 중고선 구매일 경우 그 범위는 줄어든다. 6) 인도도 받기 전에 VLCC 신조선 계약을 높은 수익으로 되팔 수도 있다.

좋은 소식은 이러한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경기대응적 VLCC 발주는 구매자와 투자자 집단 내에서 아직 확실히 자리 잡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앞으로도 지켜봐야 할 조짐으로 걱정거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구매자는 물에 발가락만 살짝 담그고 있을 뿐 아직 몸을 담근 상태가 아니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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