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해양보증보험 조규열 사장

▲ 조규열 사장
선화주 상생등 비금융적 기능 강화해야

오는 7월을 목표로 한창 설립 작업이 진행 중인 한국해양진흥공사에 한국해운업계가 거는 기대는 지대하다. 해양수산부가 해양진흥공사를 통해 매년 50~60척씩 3년간 약 200여척의 선박을 신조 지원하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공사에 대한 해운업계의 기대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 바라보는 해양진흥공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현금성 자산이 크지 않기 때문에 공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해양진흥공사가 어떻게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의 기틀을 잡아야 한국해운업계가 그토록 염원해 왔던 백기사가 될 수 있을까? 한국수출입은행에서 15여년 가까이 선박금융을 담당하다가 지난해말 한국해양보증보험 제2대 사장으로 취임한 조규열 사장에게 그 해법을 물었다.

조규열 사장은 “해양진흥공사가 공공성과 성업성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단단한 구조의 선박금융 딜을 많이 만들어 정책금융기관과 상업은행을 선박금융시장에 유치하고 부족한 유동성 갭을 채우는 컨셉으로 자리를 잡아 나간다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본금 3조원 규모로 출범하게 되는 해양진흥공사는 해양금융기능과 해양정책기능을 동시에 갖지만 공사의 성폐는 결국 세일앤리스백 등 선박투자, 선박금융 후순위보증 등 해양금융기능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조규열 사장은 해양진흥공사가 기금이 아닌 공사이기 때문에 수지균형을 유지하는 자생력을 갖춘 조직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무역보험공사나 신용보증기금 같은 기금은 손실이 나면 정부가 자동으로 채워주지만 해운산업 지원을 위해 설립된 해양진흥공사가 손실을 내면 정부의 추가 출자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추가 출자를 받게 되더라도 비싼 댓가는 치러야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사가 제 역할을 해내려면 선화주, 조선소, 상업금융기관 등 민간에서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이를 위해 반드시 전제 돼야하는 것이 바로 공사가 수지균형이다. 공사가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춘 조직이 되어야 민간 투자 유치가 가능해지고 민간 투자로 확보한 자산으로 다시 해운산업을 지원하는 선순환 고리를 형성시킬 수 있다는 게 조규열 사장의 생각이다.
 
비금융적 기능 강화로 재원한계 극복해야
그렇다면 설립자본금 3조원, 실제로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은 이보다 훨씬 적은 정부의 현금출자 2천억원과 해양보증보험이 보유한 약 3천억원 등 약 5천억원 안팎의 제한된 재원으로 어떻게 공사가 수지균형을 맞추는 자생력있는 조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조규열 사장은 제한된 재원으로 공사가 가장 효율적으로 정책기능을 수행하며 자생력까지 갖추려면 결국 비금융적기능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상선의 메가 컨테이너선을 확보하기 위한 자금만 2조 6천억원이 필요하고 공사의 주된 기능인 후순위보증은 고위험 상품이어서 보수적인 보증배수 운용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공사가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대단히 제한적인데 제한된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선주-화주-조선으로 이어지는 상생협력을 통해 대량화물 우선적취권제도와 같은 비금융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우선적취권제도를 도입해 채권회수장치를 강화시키면 정책금융기관과 상업금융기관의 선박금융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해 유동성 부족으로 애로를 겪고 있는 선박금융시장의 자금 공급 규모를 확대시킬 수 있다.”

직접 해운사에게 대규모 지원을 하는 것 보다는 우선적취권제도와 같은 비금융 기능을 접목시켜 상업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딜을 많이 개발하고 시장 실패부문만 공사가 효율적으로 보완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지적이다.

조규열 사장은 해양진흥공사의 자본금 규모 등을 고려할 때 국내에서 요구하는 연간 선박금융 규모가 30억~50억 달러를공사가 다 소화할 수없기 때문에 정책금융기관과 상업은행들이 기존의 프로그램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사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세계 선박금융시장은 유동성 갭 부족으로 애로를 겪고 있다. 국내에서 그나마 선박금융을 제공해왔던 정책금융기관들과 일부 상업은행들마저 공사 설립을 계기로 선박금융에서 손을 떼려고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공사가 정책금융기관과 상업금융기관과의 공조없이 국내 선박금융을 전담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금융기관들과 상업은행, 기존 펀드 투자자들이 계속해서 선박금융 공급규모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공사가 인정적인 선박금융 딜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기능을 해나가야 한다.”

‘어려우니 지원해 달라’는 논리 탈피해야
조규열 사장은 해운업계가 어려우니 무조건 지원해달라는 전통적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190여개 국적외항선사가 존재하는데 이들 선사를 모두 지원할 수도 없고 어려우니 무조건 지원하라는 논리로 접근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해운업계를 더 어렵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부실 해운사를 지원하게 되면 결국 부실 여신이 된다. 이는 금융기관들이 해운산업 지원을 더욱 기피하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되풀이돼 오히려 해운업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된다. 금융지원은 생존력이 있는 곳으로 가야지만 선사들이 이 모델에 들어오기 위해 노력한다. 즉 공사의 건전성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지원기준을 만들고 구조화 자문과 상생제도 정착 등 비금융적 기능을 배가해 많은 선사들이 이 기준에 들어오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한다.”

조규열 사장은 생존 가능한 선사를 중점 지원함으로써 국적선사들이 통합과 합병으로 대형화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해운업계는 통합과 합병으로 대형화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데 우리 해운업계는 여전히 오너십에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해운업계는 오너십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M&A는 고사하고 선박확보를 위한 자본유치 조차 지분 희석을 우려해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과도한 레버리지를 이용하게 돼 부채비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분이 희석되더라도 자본을 유치해 우량 회사로 키워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함으로써 경영권을 유지하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산건전성 해치는 무리한 정책 지양
그러면 해양진흥공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과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가? 조규열 사장은 공사가 자산건전성을 해치면서까지 무리하게 정책과 업무를 추진하는 것은 피해야하며 자산건전성과 공공성을 조화롭게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정책과 업무를 추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조규열 사장은 공사가 장기용선계약 관련 입찰보증이나 계약이행보증 등의 기능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사법상 보증업무는 선박과 같은 자산 취득과 관련된 보증만 취급토록 돼 있는데 국적선사들은 자산 이외에도 장기용선계약 입찰에 참여할 때 화주가 요구하는 입찰보증이나 계약이행보증이 필요하다.

“입찰보증 및 계약이행보증은 현재 서울보증보험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취급하다보니 한도 부족 등으로 선사들이 애로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보증 업무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비즈니스일 뿐만 아니라 해운업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이므로 공사법 시행령 제정시 이러한 비즈니스가 가능하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선사들이 국제환경규제에 필요한 대처를 위해 필요한 재원을 공사가 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선박평형수처리, 황산화물규제 등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적선사들은 선박에 평형수처리장치, 스크러버 등 환경설비를 장착해야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 조규열 사장은 환경규제설비 장착은 조선소, 기자재업체 등 연관 산업계로 수혜자가 확산되지만 비용부담 주체는 해운사로 한정돼 있다며 화주-선주-금융기관의 상생 틀 속에서 금융 지원구조가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환경설비는 대규모 재원이 소요돼 공사 단독으로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공사가 환경설비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고 정부가 경제장관회의 등을 통해 정책금융기관, 화주, 조선소 등이 공동으로 지원해 나가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

세 번째는 국내외 해양금융시장이 유동성 갭 부족으로 애로를 겪고 있는데 공사가 후순위 채권보증 프로그램을 도입해 해양금융시장의 가용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조규열 사장은 “가령 Vale 프로젝트의 경우 약 20척에 달하는 VLOC의 후순위 재원 확보를 위해 국적선사가 채권을 발행하고 공사가 이 채권을 보증하는 커버드 본드(Covered Bond)를 발행하면 Loan Market의 유동성 부족을 Capital Market을 통해 해소하고 국적선사의 비용 절감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네 번째는 한국형 텍스리스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텍스리스(Tax Lease)는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이미 도입해 운영중인데 고속감가상가제도를 활용해 선박 운영 초기에 비용을 많이 발생시켜 법인세를 절감(통상 매년 상당한 이익을 내는 상업금융기관을 lessor로 정하고, lessor는 고속감가상각에 따른 법인세 절감액의 대부분을 해운사로 이전시킴)시키는 리스제도를 말한다. 선박 신조시 6~7년 정도 고속감가상각을 해주면 선사와 금융권이 실질적으로 10% 이상의 비용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중국과 한국 조선소의 신조선가는 10%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를 극복하는게 쉽지 않다. 정부가 폐선보조금 등을 통해 선가차액을 보전해준다고 하지만 일시적이다. 폐선보조금보다 고속감가상각제도를 도입한다면 선사들게 금융비용 절감 효과가 있어 실질적으로 중국조선소와의 선가차액을 극복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해운과 조선, 금융의 상생을 유도할 수 있다. 공사가 고속감가상각제도 도입을 위한 에이전트로서 KMI,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 관련기관과 공동으로 연구하여 정부 관계부처들와 협의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한다.”

다섯 번째는 사후관리기능이다. 조규열 사장은 “선박금융 사고는 언제든 터질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대비가 사실상 전무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선박이 압류되거나 매각, 재용선 등 사후 관리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대비가 전무하고 사후관리를 할 수 있는 전문인력도 없다. 인력채용시 반드시 사후관리를 책임질 수 있는 전문인력을 확보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섯 번째는 공사가 세일앤리스백을 통한 토니지 뱅크 역할을 할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리스자회사 설립을 통한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조규열 사장은 “공사가 직접 선박을 소유하게 되면 선박 사고로 해양오염이 발생할 경우(특히 탱커의 경우) 공사가 환경오염에 따른 손해배상 등을 감당하기 곤란할 수도 있다. 중국은행들이 리스자회사를 만들어 선박을 소유하고 선사들에게 BBC로 용선해주는 것도 이러한 위험을 헷징하기 위해서다. 국제법상 리스회사는 패시브 파이낸서(passive financier)라고 해서 선박금융을 일으키기 위한 수동적인 단순오너로 보고 해양오염사고가 발생해도 리스회사에 귀책 시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해운금융 융복합 전문인력 확보해야
마지막으로 조규열 사장은 공사가 해운산업 재건이라는 설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해운과 금융산업을 두루 이해하는 전문 인력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사고 발생시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도 했지만 해운산업과 금융산업을 잘알고 있는 전문인력을 확보해야만 업계 실정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규열 사장은 이러한 해운금융 융복합 전문인력을 확보하려면 직원들에게 금융공공기관에 준하는 대우를 해줘야하며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과 더불어 조직의 기강과 멘탈리티(mentality)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사가 이익을 추구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수지균형을 맞추는 자생력을 가진 조직이라는 기강과 멘탈리트를 갖춰야만 전문인력들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향후 해운업계의 어려움을 같이 고민해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Solution Provider'의 역할을 영구적이고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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